[유인권의 핵인싸] 더닝-크루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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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지난해 말 한국연구재단 주관의 기초연구포럼이 있었다. 한국연구재단은 우리나라 연구개발(R&D) 비용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우리나라의 금년도 국가 R&D 예산은 약 30조 원이며, 국민총생산(GDP) 대비 기준으로 세계 1위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 더 이상 ‘좇아가는’ 나라가 아니라 ‘이끌어 가는’ 나라가 되고자, 노벨 과학상을 꿈꾸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강국을 지향하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 ‘지역대학’ 본부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해당 포럼에서 ‘지역대학 연구 혁신’과 관련해 주제발표를 맡았다.

우선 ‘지역대학’이란 말이 불편했다. 이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배경과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 말이 거론될 때마다, 지역을 실제로 도우려는 것인지 차별을 공공연히 정당화하려는 것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론의 머리기사로 지역대학이 뜰 때마다 지역대학이 이렇게 어려우므로 무언가 국가적인, 사회적인 정책 전환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특정되는 비수도권이 이렇게 망해 가고 있다는 걸 동네방네 약 올리듯 알리려는 것인지 솔직히 의심스러울 정도다.

지역문제는 국가적 재난으로 인식해야
맹목적 수도권 집중, 모든 것 망가뜨려
능력에 대한 객관적·냉정한 평가 필요


발표 서두에서 이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서울 지역대학’의 발표에 이어 ‘부산 지역대학’의 고민을 포함한 ‘K-Research 2040’을 이야기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 R&D 예산을 갖고 있는, 한국의 연구개발 패러다임의 전환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역문제는 단순히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는 ‘차이’가 아니라 ‘국가적 재난’에 가까운 문제이며, 이것은 지역을 모티브로 해서가 아니라 국가적 중요 문제의 핵심에 지역이 있다는 것으로 인지돼야 한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놀라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투입되는 연구자원(연구비와 대학원생)은 수도권 대학이 비수도권 대학에 비해 2배에 육박하는데 연구실적은 거의 같은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지난 3년간 투입된 연구비 1억 원당 연구논문 실적을 보면, 부산대와 경북대가 평균 1.2편 정도인데 비해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는 평균 0.6편도 안 된다. 비수도권 연구인력들이 안간힘을 써서 전국적으로 뒤지지 않을 성과물을 만들어 내는 동안 수도권에서는 ‘수도권’이라는 이름만으로 몰려들어 넘쳐 나는 연구자원을 갖고도 비슷한 정도의 성과에 만족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성과물의 양보다는 질적인 수준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연구개발 분야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는 별개다. 현재까지 연구 성과물의 질적 수준을 정량화하는 방법은 그 자체로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이며, 더 나아가 성과의 비교 자체가 과연 무엇을 위해 필요한지도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현재 정량적인 비교의 시대를 살고 있으며, 적어도 이것을 통해 인정을 받고 또 반성과 자구 노력을 요청받고 있다.

결국 수도권으로의 행진은 맹목적이며, 심지어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 R&D 예산 투자도 아무 경쟁력 없이 수도권의 몸집 불리기를 위해서만 퍼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비수도권의 연구와 교육을 포함한 모든 중요 인프라는 붕괴 중이다. 수도권에 대한 과대평가와 비수도권에 대한 과소평가가 맞물려 야기된, 맹목적인 수도권 집중이라는 광풍이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게 어디 연구 분야에만 국한된 일일까.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게 있다. 심리학자 더닝과 크루거의 연구 결과에서 검증된 오래된 인지의 편향성 현상이다. 무능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으로 야기된 문제 자체를 미처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환영적 우월감을 갖게 되는 반면, 유능한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환영적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비수도권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도대체 수도권으로만 가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인지 편향의 근거는 무엇일까. 이런 인지 편향에 근거하여 한쪽은 승승장구하고 다른 한쪽은 몰락하고 있는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경쟁이라면 그만큼 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 이는 경쟁 시스템의 생명이다. 공정한 능력 평가에 민감한 젊은 세대라면 적어도 ‘인풋-아웃풋’(input-output)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이에 따른 이성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담컨대 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느냐의 문제보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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