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낭만의 도시 부산’ 쓸쓸한 속 모습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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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선영, 두 번째 소설집 ‘호텔 해운대’ 출간

두 번째 소설집 <호텔 해운대>를 낸 오선영 소설가는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소설을 쓰겠다”라고 했다. 오선영 제공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오선영(41)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호텔 해운대>(창비)는 ‘활력 넘치는 생활의 도시 부산, 쌉싸래하고 달큼한 젊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편 7편이 실렸다.

푸른 바다를 끼고 휘황찬란한 빛의 호텔이 서 있는 해운대, 그게 낭만 도시 부산의 겉모습이다. 그러나 소설은 낭만 도시 부산의 쓸쓸한 속 모습을 추궁한다. “뭐라카노, 니는 부산에 산다고 맨날 회 처먹고, 밀면이랑 돼지국밥 먹다가 시원소주 마시면서 롯데 응원하고, 해운대 가서 수영하나.” 물론 그렇지 않고 부산은 뭔가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정확히 어떤 얼굴인지 알 수 없는 가면배우 같은’(21쪽) 도시다. 제어할 수 없는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에는 변변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2013년 부산일보 ‘신춘’ 등단
쌉쌀 달큼한 젊은층 이야기
7편의 단편소설들로 구성
지방도시의 비애와 삶 그려

이미 1990년대 초등학생들조차 ‘롯데월드’나 ‘63빌딩’ 따위 ‘서울의 화려한 단어’를 들먹이면 돋보일 수 있다는 허위의식을 가지기도 했던 지방도시가 부산이다(‘우리들의 낙원’). 지방도시의 비애는 넓게 퍼져 있다. 실제 지방대 인문대 출신이 전공을 살리는 일은 쌍봉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고 힘든 곳이 부산이다(‘호텔 해운대’). 지역대학 박사수료생인 여자 시간강사는 내세울 것 없는 적나라한 사회적 위치와 계급으로 인해 자학과 자기비하에 시달리기도 하는 곳이 부산이다(‘다시 만난 세계’).

이를테면 글 쓰는 문인 노릇도 제대로 하려면 KTX를 타고 서울을 뻔질나게 오르내려야 하는 곳이 부산이라는 거다. 서울 유명 문인의 문하생 행세를 하면서 서울 문인들 대열에 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대열에 껴서 듣는 소리가 “서울과 부산의 글쓰기 환경이 다르다. 장편소설을 쓰려면 부산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사하라”는 따위다(‘바람벽’). 도대체 우리 시대에 부산-지방도시의 삶은 뭔가, 그 삶은 안녕하신가, 라는 것이 이번 소설집의 큰 물음 중 하나다.

오선영의 작품들은 지방도시 부산의 비애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즈음 젊은 세대의 비애로 확대시키고 있다. ‘지진주의보’는 깊이 있는 문장들이 구사된 작품이다. 젊은 여성의 아버지는 빚만 잔뜩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마트에서 일하다가 지진이 일어난 날 사고로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는다. 애인에게 실연 통보까지 받은 젊은 여성은 ‘삶의 시커먼 싱크홀’ 앞에 서서 소리친다. ‘아아아. 한번 더 소리를 질렀다. 구멍이 블랙홀처럼 걱정과 슬픔, 불안과 공포를 빨아들여주기를 바랐다. 할 수만 있다면 구멍 안으로 끝이 없는 막막함과 절망감을 다 밀어넣고 싶었다.’(141쪽) 막다른 삶의 절규인 거다.

단편 ‘도서관 적응기’에선 공공도서관을 오가며 몇 년째 공무원 시험에 매달려 있는 젊은 남성이 나온다. 우연찮게 사례금을 챙기겠다며 집 잃은 맹견 한 마리의 주인을 찾아나서는데 이 개가 사납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적이다. 이 시대 젊은 세대의 신세가 사나운 맹견을 만난 막막한 처지라는 거다.

지방도시와 젊은 세대의 비애, 이것이 우리 시대 가장 큰 문제의 하나라는 거다. 그런데 소설은 이 문제에 대한 출구를 낼 수 있나.

작품 ‘바람벽’에서는 힘들게 서울을 오르내리는 소설가 입문생에게 대학 시절 선배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이 전해진다. 서울을 부러워하지 않고 지방 부산에서 최소한의 돈벌이만 하면서 모든 시간을 글에 바쳤던 선배다. 작중 소설가는 오래된 원고들이 놓인 선배의 빈소를 지키며 앉아 있다. 오선영은 “앞으로도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계속해서 소설을 쓰겠다”라고 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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