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의 시인의 서재] K팝의 전설과 랭스턴 휴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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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시와사상’ 편집위원

지난 주말에 목포로 여행을 떠났다. 처음 방문하는 곳인데 왠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목포의 눈물’이란 가요 때문일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하니 4시간이나 걸리는 꽤 먼 곳이었다. 조선 시대의 불교 탱화와 불상의 특징이 잘 보존된 미황사를 방문하고 달마산을 등반했다. 대개의 사찰에는 부처 옆에 관세음보살과 보현보살이 앉아 있는데, 미황사에는 부처님 세 분이 동시에 모셔져 있는 것이 독특했다.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목포 유달산에 설치된 북항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별로 높지 않은 유달산은 바위와 정자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린 고하도 섬에서 유달산을 보니 목포가 문화관광 4대 도시라고 자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을 제작한 일화가 담긴 고하도 아래의 긴 해상 덱 산책로를 걸었다. 겨울 바다의 찬 기운이 얼굴을 스쳤지만 ‘목포의 눈물’ 가사에 실린 삼백 년 품은 한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난영 ‘목포의 눈물’엔 민중의 한 오롯
가슴 울리는 ‘영혼의 음악’이 지닌 힘
영가·블루스 등 흑인 정체성 담은 시들도
고통과 슬픔 예술로 승화할 때 큰 감동

유달산 일등바위에서 내려다보니 무수한 섬들이 빚어내는 다도해의 경치는 수려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곡식을 쌓은 듯이 위장한 노적봉을 보러 가다 이난영의 노래비를 만났다. 가사를 읽는데 비음 섞인 그녀의 애절한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 발표된 이 트로트 곡은 목포의 유달산, 삼학도, 영산강이 스며 있고 이별에 대한 슬픔이 나라 잃은 백성들의 한처럼 들려왔다. 근대 문화의 유산을 체계적으로 기획 전시한 군산에서 본 것처럼 당시의 참혹했던 민중의 삶을 체감할 수 있었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난영의 노래를 들었다. 이전에는 공감이 가지 않던 노래인데 그 의미를 알고 귀 기울이니 감동이 밀려왔다. 현대 음악의 세련된 반주가 아닌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의 단순한 반주에도 심장을 울리는 묘한 목소리와 발성이 신비스러웠다. 이난영의 삶을 찾아보니 그녀가 선구적으로 성취한 대중가요사의 업적은 놀라웠다. 그것을 지역의 중요한 문화콘텐츠로 홍보하는 것도 의미 있었다.

지난겨울 TV조선에서 방영한 ‘내일은 국민가수’를 유튜브 채널로 자주 시청했다. 마지막에 선정되지 못한 김영흠과 김희석은 내가 특별히 좋아한 가수들이다. 김영흠은 기존의 가수에게서 보지 못한 야수적 매력이 느껴지는 발성이 신선하고, 김희석은 흑인 영가의 ‘솔(Soul)’적인 감성이 묻어 있다. 무엇보다 김유하라는 일곱 살 소녀의 천부적인 재능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국민들이 직접 투표하는 참여의식이 돋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연말에 바빴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위해 직접 투표에 참가했다. ‘숯불 총각’ 김동현은 부산 출신이어서 열띤 후원을 했다.

국민가수를 뽑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대중가요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감수성을 접하고 많이 놀랐다. 기존 가수의 노래를 자기만의 색깔로 해석해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가수가 결국 선정되었다. 앵무새 같은 가수가 아닌 자기만의 예술 세계로 나아가거나 비전이 보이는 무명의 가수들을 아낌없이 후원하는 팬으로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대중의 따스한 마음으로 인해 ‘방탄소년단’의 위대한 성취도 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의 랭스턴 휴스(1902~1967)는 흑인 민중 예술의 정수를 ‘솔’로 규정했다. 그는 흑인의 고통과 수난에 대한 종족의 집단의식과 그들 삶의 리듬을 시에 담아낸 시인이다. 여러 인종의 피가 섞인 혼혈로서, 흑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시적 예언자처럼 흑인 시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의 시는 단순하면서 투명하고 소박하다. 일상어가 많은데 블루스, 비밥, 재즈 등이 녹아 있다. 특히 블루스는 그 어원이 푸른 악마들이란 뜻의 ‘Blue Devils’에서 왔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음울하면서도 영혼을 후벼 파는 호소력이 있다. 미국 남부의 아프리카인들이 장례를 치를 때 청색 의복을 입고 자신들의 슬픔과 고통을 표현한 데서 유래한다.

그는 ‘니그로(Negro)’라는 시에서 ‘나는 늘 가수였지./ 아프리카에서 조지아로 오는 모든 길에/ 나는 슬픈 노래를 끌고 다녔지/ 나는 래그타임의 재즈를 만들었지.// 나는 희생자였지./ 벨기에 사람들이 콩고 강에서 내 손목을 잘랐지./ 그들은 여전히 미시시피강에서 폭력을 가했지’라고 흑인의 고통을 표현한다. 하지만 ‘나, 역시(I, Too)’란 시에서 ‘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며/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이다.// 나 역시 아메리카이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흑인 영가를 풍성하게 시 속에 흡수하여 흑인 저항운동과 미학을 전개시킨 그의 시를 읽으며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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