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북한 미사일 도발의 정치학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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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18년 이후 중단했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재개를 검토하겠다고 19일 밝히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위주의 무력시위를 미국의 레드라인(Red Line)인 ICBM과 핵 실험으로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북한은 새해 들어서만 사흘에 한 번씩 모두 네 차례, 극초음속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1~2발씩 쏘아 올리고 있다. 2020년 3월 때보다 간격이 짧아졌고 강도는 더 세졌다. 궁금증은 이런 무력도발이 한국 대통령 선거, 김정일 탄생 80주년,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 등을 앞두고 왜 집중적으로 벌어지냐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6일 "국방과학원은 1월 5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하였다"라고 보도했다. 이날 시험발사에는 중앙위원회 군수공업부와 국방과학 부문의 지도 간부들이 참관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불참했다. 연합뉴스

■북한 스케줄대로 전략무기 개발 강행

17일 이동식 차량에서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은 주한미군의 에이태킴스 미사일과 비슷한 KN-24였다. 극초음속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의 탄두부에 ‘극초음속 활공체(HGV)’를 장착한 미사일로, 고도 30~70km에서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고 저고도 변칙기동을 하므로 미국과 한국이 보유한 기존의 미사일방어(MD) 체계로는 요격하기 어렵다. 이 미사일을 ‘게임체인저’라고 부르는 이유다.

신년의 연쇄적 북한 무력시위는 미국의 제재 강화에 맞불을 놓는 동시에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무기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신형 미사일 시험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발표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것임을 강변했다. 8차 당대회에서 전략핵무기의 고도화와 함께, 극초음속미사일, 수중 및 지상 고체연료 ICBM, 핵잠수함과 수중발사핵전략무기, 군사정찰위성, 무인정찰기 등을 개발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은 미사일 능력의 급속한 고도화를 추구하고 있고 앞으로도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북한 벼랑 끝 전술의 배후

북한의 무력시위 뒤에는 몇 가지 확신이 숨겨져 있다. 첫 번째가 중국은 절대 북한 붕괴를 좌시하지 않는다는 자신감이다.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를 ‘순망치한’으로 표현하는 중국은 한국과 미국과는 달리 ‘변동을 위한 변화’가 아닌 ‘안정을 위한 변화’를 추구한다. 북한의 핵 도발이 이어지더라도 이 원칙을 포기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윤대규 전 경남대 북한대학원 원장은 저서 <북한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서 “중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해가 훼손되지 않는 수준에서 대북지원과 협력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관리하는 모양새”라면서 “미·중관계가 경쟁·대립의 양상으로 전이될수록 북·중관계가 강화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이 북한 추가 제제를 위해 유엔 안보리 개최를 요청했지만, 중국이 “과잉반응을 하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반대해 소집조차 힘든 상황이다. 중국의 ‘북한 안정 우선 정책’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를 반감·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다.

중국의 간접 지원으로 인해 대북 경제 제재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국방안보전략연구원 최용환 한반도전략연구실장은 “제재가 지속되는 수십년 동안 북한이 보여 준 것은 제재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정치적 위기로 잘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제재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오히려 UN의 제재가 내부 단속과 사회통제의 핑계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지난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해 성공시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국방과학원이 지난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해 성공시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한국과 미국은 먼저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믿음도 작용하고 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은 “한·미가 먼저 북한을 공격하면 한국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장사정포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서 북한의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사회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극히 취약한 구조다. 원자력발전소는 굳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취약점이기도 하다. 미국조차도 임계선을 넘는 북한에 대해 군사적 공격은 옵션에 불과할 뿐, 실제로 감행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윤대규 전 원장은 “미국은 3만여 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의 안전은 물론이고, 석유와 이스라엘이 연관된 중동만큼 전쟁을 할 만한 이익을 찾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미·중 경제전쟁,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대척, 대만해협 사태 등 전선이 분산되면서 미국으로서도 한반도의 현상 유지가 최선의 방안이라는 지적이다.


■핵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눈물, 영향 미칠까?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패배의 눈물을 닦아야 하는 시대, 힘이 강해야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터득한 진리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이 새해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발사 직후 보도한 내용이다. 이는 최근 우크라이나를 비롯,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등의 전례에서 학습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 위기도 북한에게는 핵을 포기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으로 인식할 수 있다. 1990년대 소비에트연방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는 1900개의 핵탄두와 2500개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대 핵 강대국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크림반도 긴장 고조, 경제 위기 등으로 ‘경제 지원, 공식 영토 확정, 안보 보장’ 등을 약속받고 핵을 러시아로 이관했다. 하지만, 1994년 미국, 러시아, 영국 등이 공동체결한 핵 포기 대신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양해각서는 러시아의 침공 위기에서 아무런 안전보장장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북한도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 처지를 보면서, 지배 체제 안정을 도모하면서도, 지렛대인 핵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다. 결국, 북한의 입장과 2022년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무력시위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이 이를 제어할 실질적 방안이나 의지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방안보전략연구원 최용환 실장은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북한의 신형무기 개발이 중국과 러시아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한, 유엔 안보리를 통한 추가 제재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첨단전술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한이 IBCM 실험 발사를 재개할 경우 중국도 대변하기 힘든 상황으로 갈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지난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해 성공시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미사일시험발사를 참관하고 있는 김정은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 국방과학원이 지난 11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해 성공시켰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사진은 미사일시험발사를 참관하고 있는 김정은국무위원장. 연합뉴스

■2022년은 꺾어지는 해, 그리고 한국 대선

올해는 김정일 탄생 80주년(2월 16일), 김일성 탄생 110년(4월 15일)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소위 꺾어지는 해이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 추대 10주년이라는 정치적 이정표들을 앞두고, 권력 강화를 위한 이벤트를 펼칠 전망이다. 외부적으로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3월 한국 대통령 선거, 3~4월 한미연합군사훈련,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존재감과 영향력을 최대한 올리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북한이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핵 실험과 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북한은 한국 정권 교체기에 정권의 전략과 태도 파악을 위한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여 긴장을 조성했다. 이를 통해 ‘남남갈등’을 야기하면서, 차기 정부를 압박하고 정치적·경제적 보상을 챙겼다. 실제로 2012년 12월 대선을 1주일 앞두고 ICBM을 발사했고,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에 유화적인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에도 6차 핵실험을 하고 ICBM을 발사했다. 게다가, 한국은 새 정권 출범 초기에 한국형 우주발사체 시험까지 예정되어 있다. 북한은 ‘압박 전략’으로 한국 정치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치려고 시도하지만, 진영으로 나뉜 여야 대선 후보들은 선거 셈법에만 바쁠 뿐 실질적인 논의조차 않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체제 유지가 관건

북한의 위협과 도발은 계속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북한이 핵과 전략무기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체제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 경쟁에서 패한 만큼 더 자신의 체제 유지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북한의 군사력 강화의 근원적 목표도 ‘체제 유지’이기 때문이다. 윤대규 전 원장은 “3대 세습의 독재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서 체제 유지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있을 수 없다. 체제 유지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정권 종말로 이어질 전쟁을 야기할 정도의 도발은 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자체 봉쇄와 유엔의 경제제재 등은 북한 지도부의 정책 실패를 외부 탓으로 돌릴 수 있는 핑계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군사시위와 함께 체제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사회 통제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발사한 지난 5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1발을 발사한 지난 5일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고공정찰기 U-2S가 착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몸값 올리기와 강대국 파워게임

미국으로서는 혼란스러운 중간선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 등에 휘말리면서 북한은 후순위로 밀린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은 무기 개발과 함께 대화 테이블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미국과 향후 핵 협상을 핵 군축 협상으로 격을 올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한·미가 비핵화를 요구할 수 없을 정도로 핵무기를 고도화해 제한적 핵 군축으로 유도하려 한다”고 숨은 의도를 지적했다.

G2로 부상한 중국, 영향력이 쇠퇴해지고 있는 미국의 역학관계도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반도가 불안정 할수록, 미·중은 각각 남한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의 끈을 놓을 수 없는데다가, 일본까지 군비 강화로 가세할 경우 평화체제 구축은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지듯 확실한 국제적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에서 지역 갈등에 대해 강대국의 협조체제가 가동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기의 한반도호 안전항해 향방은?

2022년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통일연구원 황수환 부연구위원은 “대외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국방력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북한이 밝힌 만큼, 북한의 핵전력, 재래식 무기 고도화로 인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안타까운 점은 북핵 해결의 열쇠를 여전히 미국과 중국이 쥐고 있는 현실에서 당사자인 한국은 ‘종전선언’과 ‘대화’ 촉구 이외에 정책 수단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반도 국제 관계의 불편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일수록 한국이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과 강대강 대응이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로 고착돼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국이 이미 선진국으로 성장할 정도로 과거의 한국과는 경제와 외교, 군사 등 국력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한국정부의 자주적인 정책 선택이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상황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면서도 비핵화 협상의 실패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대해서도 동시에 대비해야 한다.

국방안보전략연구원 최용환 실장은 “남북 간 군비경쟁이 격화되는 것을 피하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수교 30주년을 맞는 한·중관계를 관리하고,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내는 전략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성 확보를 위해서 남북 간의 군비경쟁을 동결·축소시킬 수 있는 전략 마련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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