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47. 반려견 자세
반려견 자세 ‘스바나 아사나’는 낮잠에서 깨어난 반려견이 기지개를 쭉쭉 켜며 몸을 추스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기력과 피로감을 제거하고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시연 배수진.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이 갈수록 고립되면서 개는 가족의 반열에 올랐고, 사람과 같은 급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개만큼 사람과 지근거리에서 오래도록 사랑받아 온 동물도 드물 것이다. 개는 붙임성이 좋고 한번 맺은 관계에서 헌신적이고, 흐린 데 없이 맑고 명랑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침입종 인간’의 저자는 “인간이 개를 가축화한 건 도구의 발명과 맞먹는 도약”이라고 강조한다. 소설가 김훈은 “눈 귀 코 입 혀 수염 발바닥 주둥이 꼬리 머리통을 쉴 새 없이 굴리고 돌려가면서 냄새 맡고 보고 듣고 노리고 물고 뜯고 씹고 핥고 빨고 헤치고 덮치고 쑤시고 뒹굴고 구르고 달리고 쫓고 쫓기고 엎어지고 일어나면서 이 세상을 몸으로 받아내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개의 공부’다”라고 한다.
실로 개는 둥그스름한 원통의 바퀴처럼 움직이고,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활기와 생기로 충만한 동물이다. 사람과 개가 교감할 때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솟는다고 한다. 아기를 낳거나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특히 많이 나오는 ‘사랑 호르몬’이다. 사람과 개가 사랑스러운 감정을 나누는 본질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감정과 같다는 얘기이다.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된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며 눈물 흘렸던 추억을 간직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주셨던 동화책 ‘플란다스의 개’의 책장에도 감동과 애달픔의 눈물방울이 떨어져 있었으리라.
화가의 꿈을 꾸던 우유 배달 소년 네로와 버려진 개 파트라슈의 우정을 그린 이 동화책과 애니메이션은, 성당에 걸려 있는 화가 루벤스의 2점의 그림 아래에서 허기와 추위에 지쳐 네로가 파트라슈를 꼭 껴안고 얼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장면은 전 세계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사랑스런 개에 대한 기억의 소환은 아리고도 풋풋했던 청소년기를 아련하게 반추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끝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로 36년간 태평성대로 이끌며 왕국을 다스리던 유디스티라 왕은 나이가 들어 왕위를 물려주고, 형제자매와 충성스런 부하 몇 명을 데리고 히말라야로 산야사 생활을 위한 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에 하나씩 일행을 잃게 되고 마지막까지 따라오며 남아 있는 것은 결국 평생 동반자인 개 한 마리였다. 왕은 천상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니 혼자만 올라오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지만 한사코 옆을 지키고 있는 개를 두고 혼자만 천상에 올라가기를 거부한다.
현명한 왕은 평생 자신을 지켜주었던 인생 여정의 동반자인 개와의 신의를 지키려 했다. 이때 홀연히 하늘에서 “네 옆의 개가 바로 너의 아버지 ‘다르마(dharma)’이니라”라는 소리가 울려 나온다. 동반자는 바로 개의 형상을 한 다르마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왕과 동반자인 개 모두가 천상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얘기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는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받아들인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현명한 종합 판단력과 인지력, 그리고 지독한 편견과 무조건적인 맹신의 늪에 빠지지 않는 날카롭고도 지혜로운 통찰력일 수도 있다.
“유화부인이 다섯 되 크기의 알을 낳았는데 금와 왕이 개와 돼지에게 주어도 먹지 않았다.” 기원전 58년 부여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개를 사육했다는 최초의 기록이다. 고구려 덕흥리 무용총 벽화에서부터 신라 토우,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에 등장할 만큼 친근한 존재였던 개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충성심과 의리가 강한 충복(忠僕)과 지체가 낮은 비천(卑賤)의 이미지를 함께 지녔다.
무속에선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안내자가 개였다. 시각이 발달해서 웬만해선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간다는 데서 유래했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였다. 지구상에 있는 4000여 종의 포유류와 1만여 종의 새 가운데 인간이 길들이는 데 성공한 것은 개를 포함해 10여 종에 불과하다.
인류학자 펫 시프먼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침입종 인간’에서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의 먹이 경쟁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늑대의 가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침입종인 현생 인류가 살아 있는 사냥도구인 개와의 협업에 성공한 덕분에 토착종인 네안데르탈인을 넘어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개를 바라보면 개도 인간을 바라보고 눈을 맞춘다. 이것은 단순히 반려 동물과 감정을 나누는 행동이 아니라 오늘날의 인류를 만든 중요한 사건의 하나라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개만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는데 그게 바로 감수성이다. 춥고 힘들었던 시절 고립감을 견디게 해준 것도 개였다는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들 중 지능은 침팬지가 높지만 감성지수(EQ)는 개가 더 높다. 특히 개는 사람처럼 눈을 마주치는 습성이 있어 인간의 감성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개의 치명적인 유혹이 인간의 역사를 바꾸었다 할 것이다.
이렇게 길들여진 개는 오랜 세월 충직함의 대명사였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오디세우스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때 그를 반긴 유일한 존재가 늙은 개 아르고스였다. 트로이 전쟁에 출정한 오디세우스는 20년 만에 귀향한다. 거지 행색인 초췌한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으나, 한때 속력과 용맹에서 따라올 개가 없었던 아르고스만이 그를 대번에 알아보고 꼬리를 치지만 다가갈 힘조차 없을 만큼 노쇠해 주인을 다시 본 순간 숨을 거둔다.
이런 아르고스는 수천 년 동안 충견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 ‘개는 사람에게 최고의 친구(Man's best friend)’라고 한다. 요샛말로 ‘베프’라는 말을 낳게 한 것이 이른바 반려견이 원조일 줄이야.
오래된 개 그림도 적지 않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의 ‘견우와 직녀’에서 직녀는 개를 데리고 서 있다. 무용총과 각저총에도 충직해 보이는 개 그림이 있다. 신라 토우의 개는 외관이 아주 다채롭다.
개는 늑대의 후손이며 농경의 시작과 함께 사람들에게 길들여졌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3만 년 전의 개 유골이나 두개골이 발견돼 농경 시작 이전에 이미 개가 등장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개 유적으로는 신석기 시대인 6000년 전에 연평도 패총에서 개를 사육한 흔적이 발굴된 바 있다. 인간세계로 들어온 개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지켜봤다. 죽어서도 함께였다. 개무덤이 그 증거다. 경남 사천시 늑도의 2000년 전 유적에서는 인간과 개가 함께 묻힌 공동묘지가 발굴됐다.
제사를 위해 희생된 개도 있다.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에서는 2000년 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던 저습지가 발굴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가마니 같은 것에 쌓여 버려진 개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개는 충실하고 의리가 있는 동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충견·의견 설화가 많다. 의견비, 개무덤, 개방죽, 개고개 같은 유적으로도 남아 있어 흥미를 끈다. 한번쯤은 들었을 법한 얘기로 전북 임실군 오수마을에 전해오는 견공 이야기는 유명하다. 만취한 주인이 산불이 났는데도 풀밭에 곯아떨어져 있자 키우던 개가 털에 물을 적셔 불을 끄고 주인을 구한 뒤, 자신은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는 내용이다.
경북 선산군에 있는 의구총과 의구비, 평양 선교리의 의구총, 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의 개탑 등은 화재로부터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의 충직한 의리를 전하고 있다. 주인이 죽자 그 묘 앞에서 시묘살이 3년을 채운 개도 있다. 포대기에 싸여 버려진 아기를 몸으로 품어 눈 속에서 살려낸 개도 있다.
연일 고을 수령의 관아에 찾아오는 개 한 마리가 기이해 뒤를 따르니 한 부인이 죽어 있었다. 정조 곧은 과부를 겁탈하려다 반항하자 그녀를 죽인 범인도 그 개가 찾아내 엄벌하고, 일가친척 없던 그녀를 장사 지내 주었다는 얘기도 김약련의 ‘의구전’에 전해 온다.
몇 해 전 길에 쓰러진 한 남자를 그가 키우던 강아지 12마리가 구급차가 올 동안 엄호하듯 감싸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두 살 난 수컷 몰티즈 ‘둥이’는 부산 모라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나자 주인 할머니를 깨워 가족 목숨을 구했다.
119소방본부 소속 연갈색 골든 레트리버 암컷 ‘번개’는 양산 염수봉을 등산하다 부상으로 조난당한 80대 노인을 사흘 만에 찾아내 구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외국에서도 충견·의견 이야기는 이어진다. 중국 사천성 성도시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개가 건물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던 소녀의 옷을 물고 늘어져 생명을 구한 바 있다. 2005년 미국에선 한 잡종개가 ‘내셔널 히어로 독 어워드’라는 상까지 받은 적이 있다.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트랙터에 깔려 도움을 요청했으나 인적이 뜸해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몇 시간 동안 방치돼 있을 때 집에 있던 농부의 개가 요란하게 울부짖어 아내가 목줄을 풀자 사고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 목숨을 구했다. 일본에서는 대지진 후 3주 동안 건물 잔해를 타고 바다에서 표류하던 개 한 마리가 발견되어 일본 사람들이 환호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터키에서는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가는 주인을 쫓아가 퇴원할 때까지 6일 동안 병원 입구를 지킨 반려견이 화제가 됐다. ‘본쿡(구슬)’이라는 이름의 이 개는 휠체어를 타고 퇴원하는 주인을 보더니 온몸을 비벼대며 기쁨을 표현해 감동을 자아냈다.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 듯하다.
한국 토종개로는 진돗개, 삽살개, 경주개 동경이, 풍산개 등이 있다. 주인을 향한 진돗개의 충성심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전남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 갔다가 7개월 만에 뼈와 가죽만 앙상히 남은 채 고향 주인에게 돌아왔다는 백구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이다. “10년이면 주인을 닮고, 100년이면 산야를 닮는다”는 진돗개는 천년 역사의 토종개다. 대담 용맹하며 절제력이 뛰어나다. 장기 출장을 다녀올 때 한꺼번에 사료와 물을 두고 가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먹는다 하니 말이다.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다.
각국을 대표할 만한 개로, 영국개 불도그는 집요한 영국 사람을 닮았고 감정이 예민한 푸들은 프랑스 사람과 비슷하다. 독일에는 이지적이고 엄격한 셰퍼드가 있고, 중국에는 좀체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 차우차우가 있다. 한때 중국에서 부의 상징으로 통했던 짱아오(일명 사자견)는 원래 티베트 일대의 양치기 개였다. 티베트에서는 수호신이 되지 못한 승려들이 본 품종으로 환생한다는 전설이 있어 매우 신성한 동물로 여겨진다.
경북 선산이 고향인 삽살개는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돼 있다. 예로부터 민간에서 ‘귀신을 보는 개’라고 일컬어 왔는데 삽살개라는 이름도 ‘삽(쫓는다)’과 ‘살(액운)’에서 유래했다.
지난 2012년 천연기념물 제540호에 이름을 올린 경주개는 동경이, 댕견, 동경개라고도 불린다. 동경은 옛 경주를 일컫는 지명이다.
풍산개는 토종개 중 가장 몸집이 크다. 함경남도 풍산군 태생인데 북한 천연기념물 제368호로 지정되어 있다. 개마고원 일대에서 나타난 견종이다. 영하의 기온에서도 잠을 잘 수 있어 사냥개나 군견으로 활용된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측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도 풍산개였다.
군에서 험준한 지형을 넘나들며 수색, 추적, 경계, 탐지 임무를 수행하는 군견(軍犬)이 있다. 우리나라 군견의 역사는 1954년 미 공군으로부터 군견 10마리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기습사건 당시 공을 세웠던 ‘란틴’과 강원도 양구제 4땅굴 수색 당시 투입된 ‘헌트’는 무장훈장을 탔다. 지뢰를 밟고 폭사하면서 장병들 목숨을 구한 헌트는 사상 처음 소위 계급장을 달았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직전에 투입된 군견을 직접 격려할 만큼 미국에는 군견 예우 문화가 정착돼 있다.
불가(佛家)에서도 개와 관련된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 백중날은 우리 전통 속에서 머슴의 생일이자 두레의 ‘호미씻이’날이기도 하지만, 부처님의 제자 목련존자가 죽어서 아귀도의 고통을 받고 개로 태어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기도로써 어머니를 극락정토에 사람으로 환생시켰다고 전해지는 날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자들은 특히 개고기 식(食)문화를 터부시한다. 인간에게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1988년 올림픽 때 야만적인 식문화 습속이라며 격렬하게 항의하던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떠올리게 된다. ‘장구피(皮)’는 개 가죽을 으뜸으로 친다던데, 프랑스 사람들이 감격해 마지않는 사물놀이패의 악기 중의 하나가 그 장구라는 걸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또한 개는 환생과 연관되어 있기에 눈이 세 개 달린 개 삼목구(三目拘) 이야기는 팔만대장경 불사 조성의 내력과 얽혀 있다. ‘세 개의 눈을 가진 개가 짖어 삼재(三災)를 쫓는다’라는 글과 함께 전해지는 그림 당삼목구(唐三目拘)는 눈이 세 개 달린 개가 두 마리의 매 사이에서 짖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 화두(話頭)가 있다. 당나라 때 한 수행승과 조주 선사의 선문답 중에 나온다. 불교의 1600여 가지 화두 중 이 화두를 깨쳐서 견성한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오래전 얘기지만 축음기 ‘빅터’ 광고에도 개가 등장한다. 연배 있으신 분들은 개가 축음기 나팔관 앞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을 듯하다. 마치 사람처럼 음악을 감상하는 신기한 모습의 개의 이름은 니퍼다. 니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 중 하나로 특히 음악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영국의 화가 프랜시스 버로드는 형이 세상을 떠나자 형이 키우던 반려견 니퍼를 데리고 와서 돌봐 주다 니퍼가 늙어서 죽자, 죽은 형과 충직한 니퍼를 애도하는 이 그림을 그렸다. ‘주인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축음기와 음반 로고로 사용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상표 중 하나가 되었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던 니퍼는 음악의 상징으로 대중의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다.
최근에는 개 특유의 뛰어난 후각을 이용해 병을 진단하는 의사 역할을 맡고 있는 개도 있다. 사람보다 최대 10만 배 이상 뛰어난 ‘개코’를 이용하면 의사가 진단하지 못하는 초기 암세포까지 찾아낼 수도 있다고 한다. 안내견·탐지견에 이어 의사견이 등장했으니 개만큼 인간에게 각별한 동물도 없을 듯하다. 영국 ‘의료 진단견’ 공동 설립자인 클레어 게스트 박사는 1조당 몇 개 정도의 비율로 섞인 물질을 냄새로 탐지할 수도 있다며 이는 올림픽 규격 수영장 2배를 합친 곳에 떨어진 피 한 방울을 감지해 내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개는 코로 세상을 인식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개는 비천함의 상징으로도 인식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개의 그런 이미지는 격 떨어진 상황이나 행동에 ‘개’ 자를 붙이는 언어 행위에 잘 나타난다.
개망나니, 개차반, 개새끼, 개뼈다귀, 개나발, 개소리부터 ‘개가 웃을 일이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오뉴월 개 패듯 한다’, ‘제 버릇 개주랴’, ‘빛 좋은 개살구’,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꼬리 삼 년 두어도 황모 못 된다’, ‘개 팔자가 상팔자’ 등의 속담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우리 일상에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 중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의 ‘이전투구(泥田鬪狗)’도 있다.
자식이나 손주를 ‘우리 강아지’로 호칭할 만큼 귀엽고 친밀한 이미지를 가진 개는 격의 없는 속성과 주인에게 무조건 아부하고 복종하는 모습 때문에 비루하고 미천한 이미지도 함께 생겨났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에게 가장 충직한 동물인 개가 이렇게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 못하는 개는 얼마나 억울할까?
그러나 세태가 바뀌어 근래엔 강아지 요가도 한다. 도그와 요가를 합쳐 도가(Doga)라고 부른다. 반려견이 직접 요가 동작을 하도록 시키기보다는, 반려인이 요가 동작을 취하면서 반려견과의 스킨십과 교감을 돕는 방식이다. 낯을 가리거나 겁이 많아 심리적으로 위축된 반려견을 위해서도 좋다.
도가는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없애는 데 좋은 운동법이다. 일각에서는 도가를 부모들이 아기들과 함께하는 유아 요가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고 얘기한다. 근육 키우는 강아지 헬스장도 북적거린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돕는 애니멀 호스피스, 장례지도사, 장묘업체 등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호텔업계에서는 펫팸족(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을 유치하기 위한 뷔페, 놀이공간, 펫 케어 등 다양한 특화 서비스도 확장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보호자 고객의 응대법을 별도로 직원들에게 교육시키는 곳도 늘고 있다.
강원도에서 채록한 이야기 중에서 견공오륜(犬公五倫)이 등장한다. 사람에게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있듯이 개에게도 다섯 가지 도덕 강목이 있다는 말일 터.
앞서 불길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주인을 구한 오수견의 사례에서와 같이 군신유의(君臣有義·임금과 신하의 도리엔 의리가 있고), 암컷이 임신하면 수컷이 정성을 다하는 부부유별(夫婦有別·부부 사이에는 서로 존중해 주는 인륜이 있으며), 새끼가 어미를 절대로 물지 않는 부자유친(父子有親·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애가 있으며), 한 개가 짖으면 동네 모든 개가 따라 짖는 붕우유신(朋友有信·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고), 작은 개가 큰 개에게 대들지 않는 장유유서(長幼有序·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는 때론 사람보다 낫다고 볼 수 있다. 개가 지켜야 할 도리라기보다 오히려 사람이 지켜야 할 것들이다.
이는 “견공(犬公)들도 이렇게 윤리와 도덕을 알고 지키며, 신의와 헌신과 충직함을 실천하는데 하물며 인간 그대들은 무엇 하냐”고 묻고 있는 듯하고, “인간들이시여 비속어 쓸 때 애먼 나를 들먹이지 말고, 나만큼만 할 도리를 다하라”고 비양하는 듯도 하다.
반려견 자세(스바나 아사나)를 실행해 보기로 하자. 먼저 두 손을 어깨너비로 한 채 앞의 바닥을 짚고 엉덩이는 위로 들어올린다. 가능한 한 두 발을 모은 채 발뒤꿈치는 바닥에서 들리지 않게 하며, 팔꿈치와 무릎을 편 상태에서 이마가 바닥에 닿을 수 있도록 가슴 부위를 아래쪽으로 낮춘다. 이것은 개가 ‘아래로 머리를 숙인 자세’, ‘아도 무카 스바나 아사나’라고 한다. 그 반대로 이 상태에서 머리를 천장을 보게 하며 상체를 위로 치켜올리면서 엉덩이는 낮추고 무릎은 바닥에 닿지 않게 하는 자세를 ‘개가 머리를 든 자세’, ‘우르드바 무카 스바나 아사나’라고 칭한다.
통칭하여 반려견 자세, 개 자세, 견공 자세, 강아지 자세, 스바나 아사나라고 한다. 여름날 오후에 낮잠에서 깨어난 반려견이 기지개를 쭉쭉 켜며 몸을 추스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자세이다. 무기력과 피로감을 제거하고 전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혈액을 하체로 흘려보내 머리를 맑게 한다.
일명 소주천(小宙天) 효과로 인해 생기를 샘솟게 하는 자세이다. 발뒤꿈치 통증이나 경직을 해소하고 발목을 강화시켜 준다. 척추와 어깨근육을 부드럽게 해 주며, 흉곽을 넓혀 주어서 심호흡을 돕는다. 허벅지 뒤쪽의 햄스트링 부분을 자극하여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 아사나는 몸을 쭉 뻗게도, 웅크리게도, 비틀게도, 뒤로 젖히게도, 들어 올리게도 할 수 있는 전신 복합 동작을 가능케 하여 허벅지, 복부, 엉덩이 근육, 종아리, 뒤꿈치까지 자극시키게 되는 만능의 자세이다. 더구나 허벅지 후면 근육의 자극으로 겨울철 보행 시 낙상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본격적인 아사나 수련 전에 준비 행법으로도 적격이다.
역질로 인해 점점 비대면의 일상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점점 더 속마음을 털어놓을 상대를 찾는 것이 힘들어질 때, 서로 간에 공감과 소통과 유대감은 점점 힘들어질 때,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의 끈이 너무도 허술해지는 듯하게 느껴질 때, 가슴과 가슴을 통해 전달되는 따뜻함이 자꾸 고갈되어 간다고 느껴질 때, 상황의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신뢰와 의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며 배신과 변절이 난무하는 세태를 보게 될 때, 묵직하고 끈끈한 곰탕 진국 같은 우정과 사랑의 교감이 그리워질 때, 눈을 들어 반려견의 표정을 한번 보라.
때론 저들도 사람만큼 표정이 다채롭고 풍부함에 놀랄 것이다. 먹이를 줄 땐 침을 흘리면서 꼬리를 달랑거리며 다가와 환하게 기쁨을 표시하고, 혼자 두고 외출할 때에는 금방 두 귀가 처지며 시무룩해지는 표정을 짓는 걸 한번 보시길. 사람과 반려견과의 정서적 유대감도 이런 감정의 소통과 공유의 결과물이 아닐까.
AI 로봇 등이 인간의 자리를 메꾸어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감성지수를 만족시키고 따라가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일 듯하다. 그러한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 바로 반려견이다.
“개는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길러져 주인을 잘 따르는 충직한 반려동물이다. 나아가 개는 이제 애정의 대용물이 되어 인간을 고독으로부터 방어한다”라고 이어령은 말하고 있다.
어느 한 시인은 한 사람이 내게 온다는 것은 온 우주가 들어오는 것이라 비유했다. 그렇다면 한 반려견이 내게 온다는 것은 온 우주가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개를 우리의 삶에 들이기로 했다는 것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기로 한 것이라 여겨진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으로 시작하는 결혼 서약처럼, 건강하고 사랑스럽고 예쁠 때만이 아니고, 늙고 병들고 초췌해져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자세 역시 반려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고 도리일 터.
애완동물은 주인의 펫(pet)에 머물지만, 반려동물은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의 반려자이며 동료이고 동반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공동체를 구성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위치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줄 때가 되었다.
개의 학명이 ‘카니스 루푸스 파밀리아스(canis lupus familiaris)’인 것처럼 개 특유의 친화력은 어느 동물도 따라오지 못한다. 학명에 ‘가족, 파밀리아스(familiaris)’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동물은 개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개 행동심리학자인 마크 베코프(Marc Bekoff)는 “사람들은 개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일갈한다. “개와 함께 산다는 것은 늘 수많은 협상이 이루어지는 평생 동안의 헌신”이라는 그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제 “잘 키운 반려견 한 마리 열 친구, 열 이웃 안 부럽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오늘 전신을 쭉쭉 늘리며 기지개 켜듯이 반려견 자세(스바나 아사나)를 취하면서 다짐해 본다. 긴긴 세월 소통과 공감으로 인간의 곁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그지없이 순수하고 맑은 어린아이의 눈매를 닮은 저 반려견처럼만 되고지고라고.
저 반려견만큼만 만나는 사람, 연인들, 이웃들, 벗님네들과 바람처럼 새털처럼 가볍고 의미 없는 교류와 소통이 아닌, 신의롭고 정겹고 따뜻함을 주고받으며 한결같이 훈훈한 관계가 이어지고 번져 나가길 소망해 본다.
끝으로 조시 빌링스의 “개는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당신을 사랑해 주는 유일한 존재다”라는 말을 들려 드린다.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