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A등급’이라더니…윤리경영에 문제 드러낸 IT 기업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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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업들이 잇따라 지배구조(Governance) 리스크를 드러내면서 ESG 평가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카카오의 ESG 보고서. 카카오 제공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업들이 잇따라 지배구조(Governance) 리스크를 드러내면서 ESG 평가의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카카오의 ESG 보고서. 카카오 제공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던 IT 업계가 지배구조(Governance) 리스크로 흔들리고 있다. 탄소배출 등 환경 분야에서 경영성과를 강조하던 IT 업체들은 ‘윤리경영’이 포함된 지배구조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경영진의 ‘먹튀’ 논란으로 위기를 맞은 카카오의 경우 사태 수습을 위한 경영진 줄사퇴가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는 당초 차기 경영진으로 예고됐던 여민수·류영준 대표가 결국 모두 사퇴했다. 특히 카카오페이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먹튀 논란을 일으킨 류영준 대표는 카카오 대표 내정자에서 사퇴한데 이어 카카오페이 대표에서도 조기 사퇴했다. 카카오페이에서는 스톡옵션 행사와 관련된 8명의 경영진은 일괄 사퇴 의사를 밝혔고 이 가운데 류 대표와 장기주 경영기획 부사장(CFO), 이진 사업총괄 부사장(CBO)이 결국 사퇴하게 됐다.

카카오페이 먹튀 사태로 그룹의 최고경영자까지 물러나게 된 카카오는 핵심 계열사를 별도로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도 논란이 되고 있다. 쪼개기 상장으로 인한 주주 가치 희석은 지배구조와 직결된 문제다. 카카오의 계열사 쪼개기 상장은 모기업 소액 주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본격적인 규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지배구조에서 문제를 드러낸 카카오는 그동안 ESG 경영을 강조해온 기업이다. 카카오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발표한 2021년 ESG경영 평가에서 A등급을 획득해 2020년에 비해 한 단계 상승했다. 카카오는 환경 부문에서 전년 보다 세 등급이나 높은 A등급을 받았고 사회 부문은 A+ 등급, 지배구조 부문은 A등급을 받았다.

카카오는 지난해 5월 발표한 첫 ESG 보고서에서 “지속적 성장과 주주 가치 제고 및 권익 보호를 위해 안정적이고 합리적이며 투명한 경영의 기반이 되는 지배구조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는 윤리경영 성과로 윤리교육 참여 인원이 전년 대비 두배 이상 늘었고 윤리 문제에 대한 핫라인 제보는 36% 줄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ESG 경영 평가는 실제 ESG 관련 리스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윤리경영의 핵심인 경영진의 사익 추구를 견제하는 장치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경우 사내 상임윤리위원회가 있지만 위원장은 이번에 사퇴하는 여민수 대표가 맡고 있어 외부 감시가 어려운 구조다.

윤리경영 문제로 인한 경영진 물갈이는 네이버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버는 지난해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윤리경영 리스크가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네이버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 결과 “사망한 노동자는 직속 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폭언과 모욕적 언행을 겪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의도적으로 배제됐으며, 과도한 업무 압박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네이버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사임했다. 최 COO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네이버 노조는 회사의 조치가 ‘전형적인 꼬리자르기’라며 반발했다. 네이버는 결국 최고 경영진인 ‘C레벨(CEO·COO·CFO·CCO)’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네이버도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ESG 경영에 대한 평가는 매우 높았다. 지난해 KCGS가 발표한 ESG 평가에서 네이버는 전년 대비 한 단계 상향된 종합 A+ 등급을 획득했다. 특히 윤리경영이 포함된 지배구조 부문에서 A+ 등급을 받았다. KCGS의 ESG 평가는 직원 사망 사건 이후에 발표됐지만 윤리 경영 문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배구조 문제는 KT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최고경영자인 구현모 대표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최근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서다. 구 대표는 국회의원들에게 이른바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를 받았고 법원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함께 약식 기소된 그룹 임직원 9명에게도 벌금 400만 원∼500만 원씩이 각각 선고됐다.

KT는 ‘2021 ESG 보고서’에서 “회사의 윤리경영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 등에 대한 제보를 접수할 수 있으며, 접수된 제보 건은 투명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KT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제 3.9조를 근거로 회사 또는 회사를 대표해 임직원이 정치 및 기부 활동을 하는 행위를 일체 금지하며 정치 자금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KT는 구 대표의 유죄 판결과 관련 대표이사에 대한 사임 권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KT 역시 KCGS의 ESG 평가에서 종합 A+, 지배구조 분야 A+를 받은 기업이다.

이처럼 기업의 ESG 평가가 실제 윤리 경영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평가 방식의 변경이나 입법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실시를 통해 ‘지배구조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과 참여연대, 한국노총 등 시민사회·노동단체들은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CEO 리스크’가 부각된 HDC현대산업개발, 카카오, 이마트 등에 대해 국민연금이 전문경영인 공익이사 추천 등의 주주제안을 진행할 것을 요구할 예정이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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