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원인 입증까지 우리가?… 참담한 ‘싼타페 참변’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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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싼타페’ 참변에 대해 법원이 유족 측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부산일보 1월 17일 자 8면 보도)하면서 유족이 오히려 현대기아차 등에게 소송비용으로 6000만 원을 물어줘야 할 판이다. 국민 법감정과 동떨어진 판단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가운데 유족 측이 제기하는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봤다.

유족 감정서·제동등 영상 외면
자동차 명장·대학 교수 실험도
“신뢰할 수 없다”는 재판부
국과수는 육안 감정 수준 그쳐
서울선 급발진 인정 판결 나기도

■현대차 결함을 현대차가 조사

부산지법 민사6부(부장판사 김현석)는 유족이 제기한 1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기각하면서 주된 근거 중 하나로 “유족이 제시한 감정서는 개인적으로 의뢰해 받은 ‘사감정’ 결과에 불과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족 의뢰로 시행된 모의실험은 “자동차의 고압연료 펌프 커플링 고정 볼트가 풀려 경유가 엔진 내부로 들어갔다”며 “점도가 낮아진 엔진오일이 경유와 함께 연소실로 유입되면서 급발진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명장’이나 대학 교수 등에 의한 실험이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처럼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유족들도 처음에는 국과수에 조사를 맡기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국과수는 “급발진 여부를 조사하려면 국과수 자체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현대차의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며 유족을 설득하려 했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가 스스로 부검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유족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민심의 변영철 변호사는 “정 그렇다면 변호인 입회 하에 국과수 조사를 진행하자고 했지만 결국 거부당했다”며 “국과수는 육안 감정 수준의 조사만으로 제조사의 과실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유족이 제출한 사고 차량 부품으로 진행한 급발진 실험의 영상 또한 재판에서 제대로 인정되지 못했다. 재판부는 “사고 이후 상당 시간이 경과된 이후 촬영된 것이고 보관의 소홀이나 제3자의 접근 등으로 자동차의 현상이 변경됐을 수 있다”고 적시했다. 유족 측은 사실상 훼손이나 조작 가능성을 언급한 이 같은 판단에 ‘어이가 없고 참담할 뿐이다’는 입장이다.

■브레이크 대신 액셀을 밟았다?

재판부는 또 “엔진 등의 결함으로 인해 자동차에 구동력이 발생하더라도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으면 자동차는 일정거리 내에서 반드시 멈춘다”며 “사건 당시 속도는 90km로 추정되는데 이는 브레이크로 충분히 제동이 가능한 속도”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등이 켜진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며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거나 착오로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이 현장 검증을 통해 ‘만일 브레이크로 착각해 액셀을 밟았다면 충돌 당시 시속은 110km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점을 직접 확인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 ‘차가 왜 이래’라며 허둥대는 운전자의 육성이 담긴 것을 감안할 때 아무것도 밟지 않았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변 변호사는 “자동차 전문가는 복합적인 이유로 차량에 문제가 생겨 구동력이 제동력보다 강하면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으며 브레이크등 또한 켜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며 “게다가 뒤차 블랙박스 영상을 들여다보면 교차로에 진입할 때 브레이크등이 점등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차량 결함을 운전자가 입증하나

차량 등 각종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물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소비자가 인과 관계를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사 측에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사건 재판부는 “원고(유족)들이 입증 책임을 다해야 하고, 제조물 책임법리에 따라 그 입증 책임이 완화되더라도 책임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2020년 서울중앙지법은 고속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사망한 60대 부부 사건에서 급발진을 인정했다. 이 재판부는 “운전자가 정상적으로 자동차를 운행하고 있던 상태”였다며 “브레이크등의 미작동만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으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제조물 책임법리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유사한 사건에 전혀 다른 판단이 나온 것이다.

변 변호사는 “여러 차례에 걸친 전문가 감정과 현대차 내부 문건 제보 등이 뒷받침됐으나 말도 안 되는 1심 결과가 나왔다”며 “유족은 전력을 다해 소송에 임했으며, 항소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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