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플라스틱 프리'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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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라이프부 차장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자잘한 짐을 정리하기 딱 좋은 기회였다. 버릴까 말까 고민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자’로 마음먹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과 잘 쓰지 않는 주방용품이 타깃이었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버리자니 어떻게 버려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래도 플라스틱이니까 재활용으로 ‘분리배출’ 해야겠지? 고무와 금속이 섞여 있는데 재활용이 가능할까? 인터넷 검색 끝에 알아낸 것은 장난감과 같은 ‘복합플라스틱’은 재활용하기 어렵다는 것. 제법 많은 양의 장난감은 결국 종량제 봉투에서 ‘쓰임’을 마감했다.

직접 사기도 했지만 여기저기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플라스틱 반찬통과 물통도 ‘처리’ 대상이 됐다. 분리배출 표시를 보니 ‘아더(OTHER)’가 많았다. ‘아더’는 말 그대로 ‘기타 재질’이란 뜻. LDPE, HDPE, PP, PS, PVC 외에 다른 재질이거나 두 가지 이상이 섞인 경우다. 재활용 표시가 있으니 ‘분리배출’로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아더’는 합성된 종류와 비율을 알 수 없어 사실상 재활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선별 과정에서 대부분 버려진다니, 장난감보다 더 짧은 ‘쓰임 생애’였다.

계절과 상관없이 자주 사서 마시는 아이스커피용 플라스틱 컵의 사정은 어떨까? 짧게는 몇 분에서 길어야 몇 시간 쓰이다 버려지는데 재활용은 제대로 되고 있을까? 그린피스가 2019년 내놓은 ‘플라스틱 대한민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소비되는 플라스틱 컵은 연간 33억 개에 달한다. 14온스 컵을 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닿을 수 있는 양이다.

<플라스틱은 어떻게 기업의 무기가 되는가>(김병규 지음)에 따르면, 아이스커피용 플라스틱 컵은 대부분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된다. 페트, PP, PS 등 여러 재질을 혼합해 만들어 외관상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활용 비율은 겨우 5%에 그친다.

이렇게 내 손에서 버려진 플라스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소각됐다면 공기 중에 독성 물질을 남겼을 것이고, 매립됐다면 몇 백년간 썩지 않고 잘게 쪼개지고 있을 것이다. 미세 플라스틱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통해,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있다.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에서 추출해서 만드는 과정과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기후변화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지구에 플라스틱만 남겠어>의 저자 강신호는 “플라스틱은 안 쓰는 게 답이고, 써야 한다면 재활용만이 답이다. 그것도 매우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소비자가 왜 플라스틱 재활용이 어려운지, 왜 태우면 안 되는지, 왜 자연에 버리면 안 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플라스틱 배출 문제의 책임은 소비자보다는 정부와 기업에 있다. 하지만 요구르트에 붙어 있던 빨대를 없애고 통조림 햄의 플라스틱 뚜껑을 없앤 것은 소비자였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인이 낫다’는 말이 있다. 현 시점에선 플라스틱 문제에 있어서도 적용될 것 같다. 수많은 개인이 플라스틱 제품을 단 하나씩만 줄여 나간다면,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플라스틱 재앙’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nice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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