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쳐다보지 마!(Don’t Look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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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거대한 혜성이 6개월 후에 지구와 충돌합니다.”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면서 벌어지는 정치 군상을 풍자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이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런스)와 지도교수 민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천체망원경으로 혜성을 처음 발견한다. 이들은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이 6개월 뒤 지구와 충돌해 생명체가 전멸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백악관에 보고한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리프)은 중간선거 지지율과 섹스 스캔들, 낙하산 인사에만 신경 쓸 뿐 지구 종말이란 절체절명의 위기 경고를 무시한다.

대통령은 초대형 성조기가 걸린 스타디움에서 지지자들에게 “저들이 하늘을 쳐다보라는 것은 여러분이 두려워하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하늘을 쳐다보지 마라”는 캠페인까지 펼친다. 대중은 SNS와 거리에서 ‘쳐다보지 마’ ‘쳐다봐’로 편을 나눠 폭력 사태까지 빚어진다. 결국 눈에 보일 정도로 다가온 혜성마저 인정하길 거부하다가 인류는 종말을 맞는다. 지구 종말을 다룬 ‘아마겟돈’이나 ‘딥 임팩트’의 화려한 액션과 영웅 서사는 없지만,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편 가르기와 대중선동, 마타도어, 스캔들’ 일색인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판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혜성과 지구 충돌하는 인류 종말 영화
정치권, 절체절명의 위기 경고 무시
편 가르기 통해 정권 연장에만 골몰

북한 미사일, 지방소멸 등 위기 산적
대선 캠프, 마타도어로 지지층 결집
국가 미래 준비하는 대선 되어야



수많은 위기가 혜성처럼 대한민국으로 날아오고 있다. 북한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극초음속미사일, 탄도미사일을 우리 머리 위로 쏘아 올리고,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정치권은 눈앞에 다가온 북 미사일 위기에 대해 ‘쳐다보지 마’ ‘쳐다봐’로 쪼개져 선거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다. ‘핵잠수함 도입’을 천명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특정 (정치)진영에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선제타격’을 주창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북한과 민주당은 ‘원팀’이 돼 저를 전쟁광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갑론을박할 뿐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한 진지한 논의는 온데간데없다. 미·중 경제전쟁, 일본의 재무장, 러시아의 호전성 등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또한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는 혜성은 이뿐만 아니다. 지방소멸, 저출산·고령화, 부동산 폭등, 디지털·모빌리티 혁명 등도 에베레스트급이다. 수도권 인구가 50%를 넘어섰고, 부산 동·서·영도구 등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의 39%(89곳)가 소멸위기다. 후보들이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에도 주변에 노인밖에 없는 이유도 지방소멸과 고령화 탓이다. 지역이 소멸하면 국가도 수도권도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부동산 폭등과 취업난으로 청년들이 결혼이란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현실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누구의 탓이라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위기를 제대로 쳐다보고,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수단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은 ‘모래에 머리를 묻는 타조’처럼 굿, 무속, 탈모제, 녹취록, 소확행, 심쿵 등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지지층 모으기에만 혈안이다. 위기가 우리 옆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생색내기 돈 풀기’ 공약만 쏟아 낼 뿐이다.

‘회색 코뿔소’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코로나19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가 아니라, 당연히 회색인 코뿔소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듯 계속적인 경고로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위기를 일부러 무시하다가 큰 위험에 빠진다는 의미다. 2013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이 개념을 제시한 세계정책연구소 미셸 부커 소장은 회색 코뿔소 등장 원인으로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위기에 대한 사전 예방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스템,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어려움, 책임성 결여 등을 꼽으면서 위기를 허비하지 말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혜성을 발견했던 민디 교수는 지구 멸망 직전 TV쇼에서 머리를 감싸며 이렇게 울부짖는다. “본인들만의 정치 이념이 있으니, 이 말도 듣지 않겠죠. 저는 어느 쪽이 아니라, 그냥 진실을 말하고 있어요. 이 정도 최소한의 합의도 못하면 어디가 망가진 거예요? 어떻게 고치죠?” 하지만, 충돌 직전까지도 “하늘을 쳐다보지 마”라고 선동하던 대통령과 백만장자들은 비밀리에 준비한 우주선을 타고 피신한다.

제20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책임감을 갖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위험을 파악해 국가미래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후보 스스로도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지, 대통령이 된 뒤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 진지하게 준비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우리 진짜 망했어!”라는 영화 OST 가사처럼 처절하게 절규하지 않으려면….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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