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국가와 예술, 문화예술지원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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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강사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Dido and Aeneas)’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연인을 떠나보낸 디도는 비탄과 절망 속에 을 부른다. ‘내가 땅에 묻힐 때’로 시작하는 이 아리아는 이별의 아픔을 고도로 절제하여 표현한 명곡이다. 카르타고의 강인한 여왕 디도를 파멸로 이끈 이별의 원인은 트로이의 패장 아이네아스에게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는 신의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디도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이 오페라의 토대는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 아이네아스의 노래)’다. 아이네아스가 새 나라를 건설하기까지의 모험을 다룬다. 아이네아스가 건국한 나라가 바로 로마다.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를 로마 역사에 소환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전 로마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로부터 길어온 셈이다. 이는 로마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신화적 장치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살았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시를 통해 황제의 통치체제를 뒷받침하고 칭송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으로 몰락 위기에 처한 로마를 질서와 번영의 팍스 로마나로 이끈 인물이다. 사실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구축한 절대권력 체제였지만, 그는 더 세련된 방식으로 집권을 정당화하고 싶었다. 그 중 하나가 문화예술 후원이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한 이가 메세나의 어원이 된 마이케나스(G.Maecenas)다. 베네치아의 화가 티에폴로의 에는 마이케나스가 아우구스투스에게 호메로스를 소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통치수단으로 예술을 지원한 지배자는 비단 아우구스투스만은 아니다. 근현대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레니 리펜슈탈에게 나치의 선전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했으며, 아르노 브레커의 조각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다. 여기에는 예술가의 정치참여와 국가동원, 작가윤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즈음 대선정국에서 내남없이 예술인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약속만으로 예술인이 처한 현실을 구제하기는 어렵다. 예술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국가의 지원 사업을 아예 거부하는 예술인도 적지 않다. 부산의 젊은 미술가 김보경은 “예술이 가치 있는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시선과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짐으로써 우리 사회가 고이지 않고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라 했다. 작가는 어떤 예술을 해야 할 것인가. 국가는 또한 어떤 예술을 지원해야 하는가. 예술가와 국가,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깊은 울림을 던져준다. 이제 국가와 통치자에 복무하는 예술이 설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만큼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이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가 없는 예술 활동을 지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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