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민족대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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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번 설도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 총리는 10여 분의 담화에서 무려 4번이나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라는 부탁을 했고 26일 다시 언급할 정도로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명절이면 늘 등장했던 ‘민족대이동’이 사라져 버렸다. 사실 코로나19는 2000여 년을 이어 온 우리 설 명절 모습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2020년 이맘때 설 명절을 앞둔 신문을 찾아봤다. ‘이번 설 연휴 기간 예상 이동 인원은 총 3279만 명으로 설날 당일에 최대 인원인 825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략) 관세청은 해외여행 성수기를 맞아 해외여행객들의 휴대품 집중 검사 기간을 운영한다.’ 불과 2년 전인데 굉장히 낯설게 여겨질 정도로 많이 변했다.

어쨌든 코로나19의 위협은 여전하고 올해 설 역시 고향의 부모, 친지들에게 가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야 한다. 고향 방문을 앞두고 가족 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번에 가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갔으면 하는 의견과 상황이 엄중하니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충돌한다.

사실 전염병으로 명절을 제대로 지내지 못한 경우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처음이 아니다. 예의범절을 엄격히 지켰던 조선 유교 사회에도 있었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1500년에서 1700년대 조선 시대 선비 일기에 역병이 돌 때는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다수 확인된다고 한다. 경북 예천군에 살았던 초간 권문해는 1582년 2월 15일 일기에 ‘나라 전체에 전염병이 유행하는 탓에 차례를 지내지 못해 조상님들께 송구스럽다’고 적었고, 안동 하회마을 유의목은 1798년 8월 14일 자에 ‘마마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정했다’고 썼다. 비슷한 문장은 다른 선비들 일기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국학진흥원은 조선 시대 역병이 돌면 의료 업무를 담당한 관청, 활인서에 출막이라는 임시시설을 만들어 역병 환자를 별도로 격리해서 치료했다는 기록도 공개했다. 현재 코로나19 생활치료시설이나 거점 병원 같은 역할이 있었던 셈이다.

아쉽지만 지금은 조선 시대 선비처럼 명절 예법조차 과감히 포기해야 할 때다. 명절 후 폭발적인 코로나 감염 증가 뉴스만은 제발 듣지 않기를 바란다.

김효정 라이프부장 tere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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