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52. 리얼리티와 환상의 변주, 로사 로이 ‘트로이의 끝(End of Tro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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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 로이(1958~)는 독일 작센주 출신으로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라이프치히 비주얼아트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그는 ‘신라이프치히 화파(NLS)’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화파를 주도하는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며 세계 미술계에 그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신라이프치히 화파는 독일 통일 이후의 라이프치히 출신 작가 그룹을 일컫는다. 통일과 함께 새로운 독일·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옛 동독 라이프치히 출신의 회화 작가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계승하는 동시에 이의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기존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특유의 구상성을 바탕으로, 내러티브의 확실한 전달과 구체적 묘사가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신라이프치히 화파는 구체적 사건과 형상의 묘사를 통해 리얼리즘 특유의 톤을 유지하는 반면, 구체적 내러티브의 제시를 의식적으로 거부한다. 리얼리즘적 묘사와 함께 의식의 수면 아래 깔린 무의식적 사고를 화면 안에서 어우름으로써 현실감과 상상력이 뒤섞인 독특한 내러티브를 만든다.

2014년 작 ‘트로이의 끝’은 무언가가 파괴된 현장의 중심에 서서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는 여성이 눈길을 끈다. 작품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작품을 살피다 보면, 파괴되는 물체는 트로이 목마상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트로이 목마는 외부의 침입에 의한 내부의 혼란을 뜻한다. 잔해가 불타고 있는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여성은 평온한 얼굴로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다.

‘트로이의 끝’은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반복되는 외부의 침입이 발생한 이후 파괴된 내면을 표상한다. 작품은 파괴된 내면을 지키고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의 형상을 전면에 내세워, 삶의 주체로서 여성의 위치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신라이프치히 화풍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는 관람자의 눈길을 끈다. 이런 독특한 감성은 회화의 색감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로사 로이는 우유 단백질 중 하나인 카세인을 함유한 페인트를 사용하여 작품을 그린다. 카세인 페인트는 화면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질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며 작품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로사 로이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신라이프치히 화파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이다. 화파 특유의 스타일에 페미니즘적 요소를 가미하여 로사 로이만의 독창적 회화 세계를 이룩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여성의 역할과 역사에 주목하고, 예술을 통해 여성의 삶을 신비로움과 낭만주의로 그려냈다. 로사 로이의 작품은 다채로운 내러티브로 구성된 여성의 삶을 환상적 은유로 드러내고 있다.

김경미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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