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입춘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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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강사

사는 일이 아플 때면 자연에 깃든다. 바람처럼 산에 들어 자신과 오롯이 마주해도 좋고, 마음 둘 데 없을 때는 서해바다 노을을 찾아 떠나도 좋다. 겨울에서 봄으로 드는 때의 산빛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달빛도, 달빛 품은 물빛도 보석보다 찬란하며, 때로는 성난 바다의 거친 물길조차 두렵지 않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만 감상의 대상이랴. 계절마다 날씨마다 빛과 색, 형태를 달리하는 산과 들, 하늘과 바다의 그 모든 풍경이 미학적 주제다.

정신을 자연보다 우위에 두었던 헤겔은 예술의 미를 자연의 미보다 윗길에 두었다. 근대철학의 테두리에서 발달한 미학은 오랫동안 자연을 등한시한 셈이다. 1960년대 이후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새로운 예술이 등장했다. 갤러리에 갇힌 상업주의 미술에 대한 반성, 그리고 환경에 관한 인식이 심화되던 시기다. 이른바 대지예술(Land Art, Earthworks)은 스케일이 거대했다. 규모만큼 막대한 후원이 필요했으며, 과도한 표현 욕구 때문에 오히려 대지와 자연에 폭력적이었다는 비난도 거셌다. 그러나 이는 생태론적 문제에 대한 예술적 답변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2000년대 이후 생태적 예술(ecological art) 또는 생태예술(eco art)이라는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열게 했다. 미학의 향방에 대한 고민도 한몫 거들었다.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진화심리학과 인지과학, 일상과 윤리학이 미학과 결합하면서 자연과 환경도 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직 환경미학(environmental aesthetics)은 생소하고 어색한 개념이지만, 범박하게는 환경주의적 자연 미학을 떠올릴 수 있다. 인간을 자연의 한 요소로 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작들이나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이 그 예다.

환경미학은 자연을 문명보다 우월한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계몽적 구호에서 나아가 자연을 미적으로 감상하기 위한 과학적 기반을 찾고 있다. 그러나 태고의 유산인 자연과 달리 미학은 근대의 지적 산물이다. 이 근원적인 차이 때문에 환경미학은 아직 이론적으로 불확실한 지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자연의 미적 가치란 무엇이며 미적 상호작용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자연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고 이를 개념화하는 일은 과연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미학적 모델이란 어쩌면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평생 자연의 순리를 따랐던 농부는 절기와 꼭 맞아떨어지던 파종 시기가 이즈음 2주 정도 늦어졌단다. 딸기도 벌꿀도 생육이 예전 같지 않다. 2022년 입춘을 맞아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 생물종 다양성의 감소와 에너지 문제를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대멸종을 늦출 수 있을까. 자연과 교감할 마당 없는 아파트 출입문에 오늘도 입춘첩을 붙인다. 立春大吉, 建陽多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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