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포세이돈, 그거 바다의 신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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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해양산업국장·한국해양산업협회 사무총장

지난해 말 ‘부산해양금융위크 2021'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해양금융 관련 기관들이 각자 진행해 온 행사를 하나로 통합해 개최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주관 기관으로 참여해 정부 정책에 지역 여론을 담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한 것은 의미가 컸다. 당시 이 행사의 토론자로 참석해 두 가지를 물었던 기억이 있다. 하나는 해양금융 시장이 정말 변하고 있는가였고, 다른 하나는 그 변화 속에서 부산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해양산업, 특히 해운과 조선, 항만 시장은 확실히 ‘탄소중립’과 ‘친환경’이 화두다. 유럽 주도의 글로벌 규제가 국내 업계의 목줄까지 쥘 정도로 강화됐고, 해양금융 기관들은 아예 친환경이 아니면 금융 지원을 중단할 정도가 됐다. 국제금융을 주도하는 기관들이 마련한 해운 분야 대출 규제인, 이른바 ‘포세이돈 원칙’을 우리 정부도 수용했다. 포세이돈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는 꼼짝없이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다.

‘해양금융도시 부산’ 새해 가속 페달
부산 안착 해양금융기관들 역할 커
대형 선사·조선 지원에 그치지 말고
지역 효과 큰 기자재·크루즈 투자도

그런 점에서 ‘해양금융도시 부산’은 단순한 슬로건이 될 수 없다.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 자산이자 동력이 돼야 한다. 그 꿈은 2009년 1월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 의결과 함께 무르익었다. 국내에 두 곳의 금융중심지를 만들겠다는 정부 발표가 뒤따랐고, ‘종합금융 중심지’인 서울과 차별화해서 부산은 ‘해양·파생금융 중심지’로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2014년 설립됐고, 그해 11월 해양금융종합센터가 부산에서 문을 열었다. 2018년 7월에는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부산에 설치되면서 해양금융 인프라 구축의 화룡점정이 됐다.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서 부산은 2014년 3월 도시 순위 27위로 ‘세계금융센터지수(GFCI 30)’에 최초로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24위(2015년)에서 70위(2017년)를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가장 최근인 지난해 9월에는 다행히 33위로 안정을 되찾았다. 더 긍정적인 것은 미래 금융기술의 지표나 다름없는 ‘핀테크 평가’에서 부산이 22위(서울 1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해양금융 분야 최고의 핵심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따라 부산에 안착할 경우 위상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늘 그렇듯 ‘각론’이 문제다. 부산이 각종 특혜와 보금자리만 제공하고 정작 혜택은 수도권의 대기업들이 계속 독차지한다면 ‘해양금융도시 부산’은 무의미하다. 해양금융과 해양산업의 관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고, 이들 중추 기관들이 지역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와 제언이 잇따라야 하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두 가지를 제언하고 싶다. 하나는 부산 해양경제의 주춧돌인 조선기자재업에 대한 대형 조선업의 상생 방안을 해양금융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크루즈산업에 대한 관심 촉구다. 종전까지 국내 조선기자재업은 조선업과 동반 성장했다. 그러나 탄소중립과 친환경으로 상징되는 ‘기술 전환의 시기’를 맞으면서 두 업종 간 지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예를 들어 대형 조선사가 전 세계 LNG선박의 60%를 수주했지만 정작 그 선박의 30%만 국산 부품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지난해 세계해양포럼에서 배정철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장 토로)은 충격적이다. 심지어 대형 조선사의 실증 선박에서도 국산이 아니라 수입산이 압도적으로 사용된다고 하니 기자재 업계의 기술 개발은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은 아닐까.

크루즈산업에 대한 투자와 보증도 다르지 않다. 크루즈산업은 코로나19로 ‘세균배양접시’라는 오명을 썼지만 최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운항 재개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재편의 시간’이 왔고, 후발 주자인 한국도 시장 참여를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크루즈산업에 대한 금융 보증이 쉽지 않다.

크루즈산업이 관광뿐 아니라 조선업, 조선기자재업, 항만 연관 산업을 추동하면서 지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할 때 선박금융 보증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적극적인 검토가 요구된다. 이는 HMM을 포함해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선사에 집중 투자한 것과도 대비된다. 안전한 수익성 추구가 중요하겠지만 정책금융은 시장 상황과 조금은 다른, 더 크고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 존재감이 부각될 수 있다. 새해에 부산에 정착한 해양금융기관들이 해운-조선-조선기자재-크루즈산업 등으로 이어지는 ‘상생 모드’로 빠르게 전환해서 지역 소통의 길잡이로 주목받기를 소원한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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