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늘도 무사히 퇴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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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차장

고작 이틀이었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직후 전국의 산업 현장이 떠들썩했다. 기업들은 앞다퉈 안전수칙 점검에 나섰고, 새 법의 ‘1호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아예 사업장 문을 닫는 곳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호들갑이다’ 싶었다. 평소 하던 대로 기존 안전수칙만 잘 지키면 될 것을…. 그런데 웬걸, 법 시행 후 고작 이틀 만에 사고가 터졌다. 지난달 29일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에서 석재 발파를 위해 구멍을 뚫던 중 토사가 붕괴해 작업자 3명이 사망했다.

고작 이틀을 버텼다. 그러나 ‘확률’이라는 잣대를 꺼내 돌이켜보면 이틀도 꽤 오래 버틴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828명. 하루 평균 2명 이상이 숨졌다. 확률적으로 볼 때 단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도 힘든 셈이다. 그나저나 828명이라니! 그러나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수는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치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극약 처방이 필요한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 이틀 만에 또 사망사고
그럼에도 법 시행 두고 찬반 논란 분분
‘모호한 기준’ 등 불구 법 필요성 여전
인재 사고로 목숨 잃는 일 더는 없어야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과 관련해 기업의 책임자가 안전관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도 원청에 관리 책임이 있다면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연간 수백 명씩 발생하는 사망자 수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찬반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반발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선후보들도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어떤 후보는 “돈을 벌기 위해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잘못된 산업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라며 법 취지를 강조하지만, 또 다른 후보는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법 시행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과도한 처벌’에 대한 호소이며, 다른 하나는 ‘모호한 기준’에 대한 지적이다.

‘과도한 처벌’을 호소하는 이들은 고의가 아닌 과실에 대해 징벌적 성격의 무거운 형량을 부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고의가 아니라 과실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단죄하려는 것은 사고 자체가 아니라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다.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고의에 속한다. 지난 2014년 대법원 역시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과실이 아닌 고의임을 명확히 했다.

반면 ‘모호한 기준’에 대한 조치는 시급하다. 세상만사가 ‘과유불급’이라지만 안전만큼은 예외다. 돌다리를 수십 번 수백 번 두드려도 지나치지 않다. 지나침의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그 반대편에 있는 부족함(혹은 소홀함)의 기준도 모호해진다.

애써 법이 그것을 구분해 죄를 물을 것이라면 그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것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그만큼 기업에 부담으로 돌아간다. 많은 기업이 모호한 법 기준 때문에 대형 법무법인에 수십억 원을 지불하며 컨설팅을 한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 살림이 더욱 쪼그라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법 시행을 반대하거나 늦출 이유가 되어선 곤란하다.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의 내용은 성길 수밖에 없다. 성긴 법 그물을 촘촘하게 손질하는 작업이 필요할지언정, 그물이 성기단 이유로 그 그물을 회수하자는 논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법 시행을 미룰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도 않다. 지난 1월에도 36명의 노동자가 아침 출근 후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딸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고를 100%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발생하는 인재(人災)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한순간 송두리째 사라져버리는 일이 더는 발생해선 안 된다.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 행사를 너무나 어렵게 시작하고 있다.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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