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딴지’에 초등 무산… “코앞 부지 두고 20분 통학 웬 말”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경남 거제시의 석연찮은 행정 처분으로 1000명이 넘는 초등학생이 코앞의 학교를 두고 매일 1km가 넘는 원정 등하교에 나서야 할 처지에 놓였다. 주택 공급량 조절을 핑계로 적법한 주상복합 건축 신청을 거부(부산일보 지난해 11월 22일 자 11면 등 보도)한 탓에 학사 신설이 백지화됐기 때문이다.

교육청은 일단 주변 학교를 활용해 급한 불을 끄기로 했지만, 아이가 걷기엔 너무 먼 데다 육중한 트레일러가 수시로 오가는 위험천만한 왕복 8차로 도로까지 지나야 해 통학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주택공급량 핑계 주상복합 일부 불허
학교 신설 가능 기준에 500세대 모자라
초등생 분산 배치에 200억 투입 ‘논란’
학부모 “왕복 8차선 등 통학환경 열악”
사업자, ‘시 재량권 남용’ 행정소송 제기
교육청 “학령 인구 감소로 대안 없어”


7일 거제교육지원청에 따르면, 고현항 항만재개발 사업지 내 초등학교 신설이 세대수 미달로 최종 무산됐다. 현재 매립지 내 주거용지 2블록에는 초등학교 용지가 획정돼 있다. 학교 신설 검토는 3800세대 이상일 때 가능하다. 반면, 주거용지 내 아파트를 모두 합쳐도 2900세대에 그친다.

다행히 민간사업자 2곳이 일반상업용지 안에 총 988세대 규모 주상복합아파트를 건축하기로 했다. 이를 보태면 신설 요건을 충족한다. 거제시는 2020년 도시관리계획 고시에서 해당 용지에 기숙사를 제외한 공동주택을 건립할 수 있다고 명시했었다.

그런데 막상 건축 허가를 신청하자 불허했다. 공동주택 수요량 대비 공급량이 과해 장기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된 상황에 상업용지까지 공동주택을 허가하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이유였다.

사업자들은 ‘재량권 남용’이라며 각각 행정심판·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경남도행정심판위원회는 ‘합리적 근거가 없는 처분’이라며 사업자 손을 들어줬다. 시는 마지못해 488세대에 대한 건축 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나머지 500세대는 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불허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기다리다 지친 교육청은 결국 학교 신설을 포기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입주하는 ‘e편한세상 유로아일랜드’ 주민 자녀는 인근 신현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내년 11월 입주 예정인 ‘유로스카이’는 중곡초로 배치된다. 예상 수용 인원은 1개교당 350명 남짓이다.

문제는 열악한 통학 환경이다. 두 단지와 학교 간 직선거리는1~1.3km다. 도보로 20분 이상 걸린다. 특히 신현초에 배치된 학생은 ‘거제대로’를 지나야 한다. 이 도로는 폭 40m, 왕복 8차로로 거제에서도 차량 통행량이 가장 많은 구간으로 손꼽힌다. 여기에 대형 조선소 2곳에 후판 등 대형 기자재를 납품하는 대형 트레일러와 덤프트럭도 수시로 오간다. 중소 협력사가 밀집한 한내공단 길목에 자리 잡은 중곡초 역시 통학로가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단지 내 학교를 기대하고 아파트를 산 수분양자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한 학부모는 “내 자식이면 이런 환경에 노출하겠냐”면서 “입주예정자들이 나서 교육 당국에 지속해서 민원을 제기했지만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예산 낭비란 지적도 나온다. 현재 추진 중인 3900여 세대를 기준으로 가구당 학생유발율 0.3명을 적용할 때, 최소 1130여 명을 수용할 초등학교가 필요하다. 분산 배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교실 증축, 학급용도 전환, 육교 등 안전시설 확보 등에 200억 원 상당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학교 신설에 필요한 예산은 500억 원. 학부모들은 “땜질식 처방으로 기존 학교의 학습 환경도 크게 저하될 공산이 크다. 결국 새 학교를 지어야 할 텐데, 예산 낭비가 불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청 관계자는 “실제 투입될 교육청 예산은 67억 원 정도다. 나머지는 주택 사업자와 거제시가 부담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지방재정연구원 컨설팅에서도 ‘신설 수요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매년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기존 학교를 활용하면 새 학교가 없어도 수용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안타깝지만, 당장은 대안이 없다. 학생 수 증가 추이를 지켜보면서 필요 시 신설 여부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