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최저임금은 인상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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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며칠 전 공고문이 하나 붙었다. 올해 최저임금이 5.1% 인상된 관계로 입주자대표 회의를 한 결과, 경비원의 근무 시간을 단축하여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는 안내였다. 이 모순적 문장은 도대체 무엇인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의 수많은 패러디 중 하나로 보아야 할까. ‘잠꼬대는 했지만 잠은 자지 않았다, 몰래 가져가긴 했지만 절도는 아니다, 때리기는 했지만 폭행은 아니다’와 같은 문장처럼 ‘최저임금은 인상되었지만 월급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안내문을 자세히 읽어보니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방식마저도 너무했다. 출근 시간을 늦추거나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휴게 시간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근로자님, 올해 최저임금이 5%나 인상되었네요. 너무 좋으시겠다. 근로자님도 쉬어가며 일하셔야 하니까, 식사 후 쉬는 시간을 늘려 드릴게요. 대신 월급은 동결입니다? 싫으면 그만두셔도 되고요. 일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거든요. 아, 근무시간이 단축되어도 원래 하시던 일은 그대로 다 하셔야 되는 거 아시죠? 우리 근로자님, 파이팅!” 그런 결정을 내린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근무지에서 제대로 쉴 수 있습니까? 임금을 인상하지 않고 대신 휴게 시간을 늘려주겠다는 일방적인 통보 앞에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비단 이곳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 시절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닐 때, 나는 미리 최저 시급을 알아두었다. 최저 시급보다 낮은 급여를 받으며 착취를 당할 수는 없으니까, 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일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니며 시급이 얼마냐고 물었을 때, 가게 주인들은 모두 최저 시급보다 낮은 액수를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학생, 이 동네 시급 다 똑같아.” 아르바이트를 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은 많았고, 가게 주인들은 최저 시급보다 낮은 액수로 임금을 담합한 것 같았다. 별수 없었다. 나는 자본도, 경험도, 특별한 능력도 없는 대학생에 불과했고 일을 하고 싶다면 그들이 결정한 임금 체계를 받아들여야 했다. 게다가 때로는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까지 일을 해야 했는데 당연하다는 듯 초과 수당은 없었다. 월급날을 한참 넘겨서야 돈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한 애덤 스미스의 이론대로라면 이 모든 상황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고,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대학생이나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은 너무도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대가, 즉 임금이라는 것은 상품의 가격과는 다르다. 임금은 인간과 결부된 문제이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에서는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까지 공장 노동자로 일했는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온 사람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이들은 아주 적은 급여를 받고 채찍으로 맞아가면서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비인간적 상황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을 시작으로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법으로 규정해 놓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제 역시 그러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이다. 수준 이하의 노동 조건이나 빈곤을 없애고 임금 생활자의 노동력 착취를 방지하고자 국가에서 최저임금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본주의적 목적이 무색하게, 임금 협상의 칼자루를 쥔 이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어낸다. 임금 인상분 대신 일방적으로 휴게 시간을 늘려 받게 된 노동자는 그 공고문을 자신의 손으로 각 동마다 게시했을 것이다. 그의 손에 담겼을 허탈함과 무력감이 얇은 종이 한 장에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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