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도시’ 부산, 노인학대 신고 증가율 ‘전국 1위’ 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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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사별하고 부산 기장군에서 홀로 살던 김순정(66·가명) 씨는 2020년 6월 아들(41)로부터 학대를 당하기 시작했다. 도박 등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아들은 지속적으로 생활비 등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다. 김 씨가 지원을 거부하자 아들은 주기적으로 김 씨의 집을 찾아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붓거나 물건을 던져 부수는 등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계속했다. 6개월가량 이어진 폭력을 견디지 못한 김 씨는 딸에게 신고를 요청했다. 김 씨는 부산시 서부노인보호전문기관의 도움으로 학대 피해 노인 전용쉼터에 입소해 상담 등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전국 7대 특·광역시 최초로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부산에서 노인학대 신고 건수가 최근 5년 사이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전년 대비 신고 증가율은 17개 시도 중 1위를 기록해 전국적인 증가세 속에서도 심각성이 두드러졌다.

작년 1118건, 전년 대비 68%↑
신고 건수는 5년 새 2.3배 증가
경기·서울 이어 세 번째로 높아
“코로나 후 공적 돌봄 약화” 지적

8일 김도읍(부산 북구·강서구을)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산의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1118건을 기록했다. 2017년 479건에 비해 약 2.3배 증가한 것이다. 이는 17개 시도 중 경기(2732건)와 서울(2616건)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특히 2020년 667건 수준이던 부산의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지난해 1118건으로 1년 만에 68%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신고 증가율인 22.8%의 3배에 달하면서 17개 시도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반면 광주, 강원, 충남, 제주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신고 건수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원도의 경우 2020년 293건의 신고가 접수됐지만 지난해는 272건으로 7%가량 줄었다.

부산의 두드러진 노인학대 증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산의 높은 노인 빈곤율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돌봄 체계 약화에 주목했다. 코로나로 복지관 등 공적 시스템이 약화되면서 연약한 가족 돌봄 기반을 갖고 있던 부산 노인들이 친족에 의한 학대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2020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전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38.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에서 검거된 노인학대 가해자 175명 중 170명이 배우자나 자녀 등 가족이었다. 보건복지부도 2020년 관련 보고서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가족 간의 노인학대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김영종 경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산의 경우 노인 빈곤율이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공적 돌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 가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지역사회 돌봄이 잘 갖춰진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에서 학대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도읍 의원은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 등으로 노인학대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면서 “노인학대를 단순히 가정 내 문제로 여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문제로 관심을 갖고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부산은 노인인구가 계속 늘고 있어 노인학대 신고도 따라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증가 비율이 급속도로 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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