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153) 우연과 기다림이 형성한 구형, 윤희 ‘Sphe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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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1950~) 작가는 나무나 돌을 깎아 형태를 만들거나 주물을 떠서 작업한다. 여러 개의 에디션이 있는 전통적 조각이 아닌, 우연과 기다림에 의해 형성되는 조각을 제작하며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가는 제철소 등 산업 현장에서 청동과 황동, 알루미늄, 구리 같은 여러 금속 재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이를 800~1200도의 고온에서 녹여, 힘과 방향·속도·양을 조금씩 달리해 원추 또는 원형의 주형 안에 녹인 금속을 던져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고온의 금속 용액은 주형 안에서 쌓이고 결합해 흘러내리게 된다. 여러 종류의 금속은 녹는점이 각기 다른 상태에서 용해되고 응고된다. 그 결과 금속들은 자연스럽게 합금이 되어 흐르고 굳어져 층이 만들어지거나 구멍이 뚫리며 독특한 형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다.

의도를 갖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 윤희의 조각은 원구 형이지만 완벽한 구형이라기보다 부분적으로 비어 있다. 금속의 재료이지만 단단함이 강조되기보다는 얇고 섬세하며, 단일한 색상이 아닌 여러 금속이 혼합되어 오묘한 빛깔을 지니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금속으로 된 구형 조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의 노출 정도에 따라 산화되는 시기와 면적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각의 표면이 청동의 색을 유지하거나 바래지고, 또한 완전히 산화해 재와 같은 다른 물질로 변화하기도 한다.

윤희 작가의 조각은 마치 자연이 생성되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작품은 최소한의 개입으로 완성되고, 끊임없이 변화해 시간의 흔적을 남기며 자연에 가까운 조각이 된다. 최지아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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