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존생] 천방지축 어리둥절, 족구는 못말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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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사소한 모임부터 해외여행까지 어려워진 현대인들. 자유시간이 늘어나도 특별한 재밋거리가 없어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데…. 새로운 취미에 선뜻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시작할지 모른다면? <부산일보> 30대 남녀 기자가 꿈꾸던 취미를 대신 경험해 드립니다. 본격 취미 탐구 성장 프로젝트, ‘취존생(취미 존중 생활)’!


<지난 이야기>

영화 ‘족구왕’을 본 뒤 족구에 꽂힌 유리. 취미 기획에 “족구를 배우겠다”고 선언하는데. 부산 유일 여성족구동호회 ‘유니크 족구단’을 찾아가 처음으로 족구공을 마주하는 유리. 처음 해본 족구 경기에서 어부지리로 이기고 족구의 재미에 눈을 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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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임이 끝난 다음 날인 1월 17일. 날씨 앱을 보니 일요일에 비 예보가 있었다. ‘앗, 비 오면 족구 못하는데…’. 한 주 건너뛰면 될 것을 무슨 유난을 떠느냐 싶겠지만, 막 재미를 느꼈을 때 끊기지 않고 해줘야 흥미를 붙일 수 있다. 게다가 그다음 주는 설 연휴라, 모임을 안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럼 공백이 2주나 생겨버린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모임에도 나옵니까?” 회장의 물음에 고민도 없이 “네!”라고 바로 답했다. 비 예보가 있어 걱정이라고 하니,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지켜보자고 했다. 금요일까지 비 예보가 바뀌지 않는다면 연락을 준다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꽤 ‘날씨 요정’인 편인데, 놀러 가는 날이면 비가 오던 날씨도 개는 신기한 경험을 몇 번이나 해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내 안의 날씨 요정이 힘을 좀 써주길 간절히 바랐다.

2022년 1월 20일 자 <부산일보> 날씨 지면 캡처 2022년 1월 20일 자 <부산일보> 날씨 지면 캡처

역시 나는 날씨 요정이 맞았다. 족구 모임을 앞둔 금요일, 주말 날씨가 비에서 구름으로 바뀌었다. 1월 23일 일요일 오후 2시. 또다시 족구장을 찾았다. 이날은 간단한 체조 후 바로 공을 만져볼 수 있었다. 날씨가 더 따뜻해진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지난주에는 취재진을 의식해서 평소보다 더 오래 몸을 푼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들었다. 학창 시절 장학사가 오는 날이면 선생님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듯 말이다.

체조가 끝나고 짝을 지어 공을 주고받는 연습 대형이 갖춰졌다. 이번 주에는 여성부 감독인 서민철 감독과의 1 대 1 특별훈련이다. 언제나 기초가 중요한 법. 땅에 튕겨 나오는 바운드 볼을 받아내는 훈련부터 시작됐다. 지난주엔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데(내 착각이겠지만), 일주일 만에 실력이 리셋 됐다. 처음 10분은 삐걱대기를 반복, 그래도 반복 학습을 하다 보니 또다시 감을 찾았다. 역시 연습만이 살길이다.


서 감독과 1대1 훈련을 하며 내 안의 족구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발을 끝까지 보라고 지도하는 서 감독의 손짓. 서 감독과 1대1 훈련을 하며 내 안의 족구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발을 끝까지 보라고 지도하는 서 감독의 손짓.

잠깐 쉬는 시간, 배움에 목마른 ‘족린이(족구+어린이)’는 헤딩을 배우고 싶어졌다. 지난주 헤딩을 못 배워서 공을 피해버린 터라 이번엔 제대로 배워 정면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불타오르는 ‘족구열’ 탓에 쉬는 시간도 없이 헤딩 수업이 시작됐다. 헤딩은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이마와 정수리 사이,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그 지점으로 받아야 아프지 않다고 했다. 감독은 공을 머리에 통통 튀겨보면서, 가장 덜 딱딱한 공을 골라줬다. “생각보다 안 아프니까 겁먹지 말고 공을 끝까지 보세요!” 공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노려보다 머리를 갖다 댔다. 감독 말 대로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충격도 여러 번 반복되면 큰 고통이 되는 법. 헤딩 수업은 5분 정도 만에 마무리됐다.


잘 맞은 공은 헤딩을 해도 아프진 않았지만, 헤딩만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 맞은 공은 헤딩을 해도 아프진 않았지만, 헤딩만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수업은 서브 특훈이다. 언니들이 네트에서 돌아가며 서브 연습을 하는 동안 나는 벽에다 대고 서브를 넣었다. 감독은 발에 공이 맞은 위치를 끝까지 보라고 했지만, 내 눈은 자꾸만 날아가는 공을 쫓아갔다. 예전에 골프를 배울 때도 그랬다. 치고 나서 바로 공을 보면 자세가 흐트러지니, 공을 보지 말라고 배웠다. 그런데 골프나 족구나 공이 잘 맞았는지 궁금하고, 미련이 남아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감독은 “이미 발을 맞고 떠난 공은 내 공이 아니다”라고 했다. 맞다. 이미 떠난 공은 어찌할 수가 없는 법. 최선을 다해 그 순간에 충실할 수밖에.


한 번 잘 차고 나면, 그 다음번은 꼭 이상하게 차진다. 이날은 공 주우러 다니느라 땀을 한바가지 흘렸다. 한 번 잘 차고 나면, 그 다음번은 꼭 이상하게 차진다. 이날은 공 주우러 다니느라 땀을 한바가지 흘렸다.

한 30분쯤 지났을까, “게임 한 판 합시다” 하는 소리에 마음이 설렜다. 아직 걸음마도 못 뗐지만 벌써 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첫 연습게임에는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경기를 보며 이미지트레이닝 하는 것도 실전 못지않게 중요한 법. 언니들이 서브, 수비, 토스하는 모습을 눈으로 훑으며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두 번째 경기에는 담당 PD와 함께 투입됐다. 이 PD가 ‘족구왕’이라고 자칭하던데, 그 실체를 낱낱이 밝힐 기회가 왔다. 나는 좌수비, 이 PD는 우수비를 맡았다.

첫 점수는 우리가 먼저 냈다. 1대 0 상황에서 주어진 첫 서브 기회. ‘30분이나 연습했으니 잘 할 수 있다!’ 심호흡하고 공을 찼는데, 왼쪽으로 벗어난 아웃. 이후로도 나의 서브 실책과 수비 실책으로 1세트를 지고 말았다.

코트 체인지 후 2세트. 파이팅을 외치고, 다시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이겨야만 3세트까지 갈 수 있으니, 팀원들도 내 구멍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이 움직여야 했다. 비슷한 스코어를 이어가다 어렵게 2세트를 가져왔다. 3세트에서도 팽팽한 스코어가 이어졌다. 선취점을 빼앗겼지만, 점수 차를 좁혀가며 바짝 따라붙었다.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 승부를 이어가다, 매치포인트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점수를 따냈다.

짜릿한 역전승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 맛에 족구 하는 거구나’ 엔도르핀이 솟구치는 느낌. 흥분상태는 오래도록 지속했다. 이날 나는 회원들 앞에서 약속해버리고야 말았다. “저 동호회 가입하겠습니다!” 순간 너무 즉흥적으로 말해버린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봤지만, 그날의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족구에 미치다

‘족구 필’이 충만했던 그 날, 나는 더 연습하겠다며 연습 공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설 연휴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그다음 주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겠다는 포부도 함께 밝혔다. 기분 좋은 들뜸은 다음 날까지도 이어졌다. 뭐에 홀린 것 마냥 족구 전도사가 되어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족구 진짜 재밌다”라며 말하고 다녔다.

흥분이 가라앉고 며칠이 지나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잘해서 이긴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나 때문에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갔을지도. 냉철한 자기객관화 과정이 끝나고 나니 결론이 섰다. 연습해야겠다!

학생 때 실내화 가방을 챙겨 다니듯, 에코백에 공을 넣어 다녔다. 틈틈이 짬이 날 때면 연습을 이어갔다. 정확한 위치에 공을 맞히기 위해 트래핑도 하고, 회사 동료들과 2대2로 팀을 나눠 간이 연습게임도 했다. 그러다 재미가 붙은 날에는 퇴근 후에 넓은 공터를 찾아 게임을 이어갔다.


퇴근 후 잔디가 깔린 공터를 찾아 연습을 이어갔다. 점점 유니크에 소속감도 생겨가고 있다. 퇴근 후 잔디가 깔린 공터를 찾아 연습을 이어갔다. 점점 유니크에 소속감도 생겨가고 있다.

연습 게임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자세로 공을 받는 연습이다. 혼자 연습하기엔 벽치기가 딱 맞는 방법이었다. 게다가 벽에다 튀기면 잘 받았는지도 알 수 있다. 잘 맞은 공은 직선으로 쭉 뻗어가서 다시 품에 쏙 안기지만, 빗맞은 공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간다. 그 덕(?)에 공을 주우러 다니느라 유산소 운동도 덤으로 할 수 있다. 퇴근 후 벽치기 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족구 연습을 했다. 연습 도중 영상통화를 걸어온 친구가 내 모습을 보더니 박장대소하며 웃었다. “니 진짜 족구에 진심이네?”


짬이 날 때마다 연습을 이어갔다. 벽에 공 튀기면서 연습하다 보면, 공 주우러 다닐 때 꽤나 운동이 된다. 짬이 날 때마다 연습을 이어갔다. 벽에 공 튀기면서 연습하다 보면, 공 주우러 다닐 때 꽤나 운동이 된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연휴가 끼어있어 2주 만에 만나는 유니크 멤버들. 이제 회원가입까지 해서인지 좀 더 소속감이 생겼다. 자신감도 좀 생겼다. 언니들과 감독에게 “연습 좀 하고 왔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큰 원을 그리며 공을 주고받는 연습에서도 어느 정도 공을 받아냈다. 이제 수비 자신감이 조금 생겼는데, 갑자기 이번 연습경기에선 세터를 해보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네? 세터요?” 세터는 공격수가 정확한 타이밍에 공격할 수 있도록 공을 띄워주는 역할이다. “그걸 제가요?” 손사래 치며 강한 부정을 하고 있는데, 다들 “한 번 해보는 거지”라며 등 떠밀었다. 수비 연습만 했는데 세터라니요.

수비와 세터는 역할이 완전 다르다. 족구는 한 사람이 공을 연달아 두 번 터치하면 안 되기 때문에 세터가 두 번째 공을 받아서 공격수에게 줘야 한다. 또 수비는 공을 잘 받아서 앞쪽으로만 보내면 되는데, 세터는 제기차기하듯 공을 위로 띄워줘야 한다. 그럼 공격수가 공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스파이크를 날릴 수 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나는 공을 띄울 줄 모른다는 것. 우리 팀 감독을 맡은 도 감독은 “제기차기하듯 하면 돼. 제기차기는 할 줄 알잖아요? 그리고 공만 살려주면 공격수가 알아서 다 해.”

게임을 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제기차기를 못 하는구나. 발이 꽤 느리구나. 공만 살려주면 되는데, 그 미션이 정말 쉽지 않았다. 공 받고 스텝이 꼬여서 넘어지면서 의도치 않은 몸개그도 했다. 세터는 너무 어려웠지만, 재미도 있었다. 수비보다 공 만질 기회도 훨씬 많았고(물론 내가 수비를 잘 못 해서 공 만질 기회가 없었겠지만) 또 내가 띄운 공으로 공격이 잘 먹혔을 때는 희열이 엄청났다. 이날 형편없는 내 실력 때문에 여러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최강의 멤버들 덕에 또 한 번의 승리를 경험했다.


공은 띄웠는데 중심을 못 잡고 뒷걸음질을 치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아프진 않았는데 무지 부끄러웠다. 공은 띄웠는데 중심을 못 잡고 뒷걸음질을 치다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아프진 않았는데 무지 부끄러웠다.

이제 겨우 족구 3주 차. 족구의 재미에 빠져버렸다. 족구라는 종목의 재미와는 별개로 이 족구팀의 매력에도 빠져버렸다. 또래의 단톡방과는 다르게 매일 아침 덕담이 올라온다. 누군가 장미꽃다발 사진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와 같은 글귀가 담긴 사진을 올려주면,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들이 오간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다해 함께 축하하고, 점심 메뉴부터 새해 목표 등등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유니크 멤버들. 40대부터 60대까지 직업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 다른 이들은 어쩌다 족구에 빠지게 됐을까? 언니들의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진다. -다음 편에 계속 ▶족구 성장기는 영상 참고


촬영·편집=이재화·김보경·정수원 PD·이지민 에디터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이재화 jhlee@busan.com , 김보경 harufor@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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