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이과생 ‘문과 점령’ 부산대 교차지원 합격 5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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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구 부산대 캠퍼스 전경. 부산일보DB

올해 부산지역 주요 대학 정시전형에서 인문계로 교차지원해 합격한 이과생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첫 문이과 통합수능에 따른 고득점 이과생들의 ‘문과 침공’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13일 부산대에 따르면 2022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인문사회계 학과에 최초 합격한 이과생(과탐 선택자)은 75명으로, 전체 인문사회계 합격자(542명) 중 13.8%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도 2.6%에 비해 5배가량 뛴 수치다. 지원자 역시 2021학년도엔 이과생 비율이 3.5%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3.6%로 치솟았다. 통상 수학 ‘미적/기하’와 탐구영역 ‘과탐’을 선택하면 이과, 수학 ‘확률/통계’와 탐구영역 ‘사탐’을 선택하면 문과로 분류된다.

인문계열 합격 542명 중 75명
1년 새 2.6%서 13.8%로 급증
서울대 인문계열은 44%가 이과
문이과 통합수능으로 이과 유리
융합인재 육성 취지와 달리 왜곡
진로보다 간판… 재수 양산 우려

학과별로는 상경계열이 20%대로 눈에 띄게 늘었다. A학과는 4.5%에서 22.5%로 올랐고, B학부도 3.0%에서 20.0%로 상승했다. C학부는 전년도 합격자 33명 중 교차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지만 올해는 29명 중 5명(17.2%)이 합격했다.

사범대 D학과와 E학과는 합격자 8명 중 절반인 4명이 교차지원자였다. 인문대 어문계열 F학과도 19명 중 6명이 교차지원 합격자로, 비율이 31.6%나 됐다. 이 학과는 작년에 교차지원 합격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이과생의 ‘문과 점령’ 현상은 전국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더 심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의 경우 문이과 교차지원이 가능한 인문·사회·예체능계 정시 최초합격자 486명 가운데 무려 216명(44.4%)이 이과생(수학 미적분/기하 선택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부가 44.0%(50명 중 22명), 경영대는 43.1%(58명 중 25명)에 달했고 사범대(국어교육과 50%, 영어교육과 63%, 지리교육과 71%)도 이과생 비율이 높았다.

서울의 한 사립대도 인문계 정시 지원자 중 30% 이상이 교차지원자(과탐 선택자)였고, 최초합격자 가운데 이과생이 40% 가까이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10~20배 폭증한 것이다.

부산에서는 부산대뿐만 아니라 동아대와 부경대도 교차지원 합격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동아대는 인문계 최초합격자 중 이과생(수학 미적분/기하 선택자) 비율이 7.9%(266명 중 21명)로 예년보다 늘었고, 부경대도 인문사회계 최초합격자 중 4.5%가 교차지원자(과탐 선택자)로 전년도(2.0%)보다 배 이상 높았다. 특히 경영학부(1.6%→12.8%)와 경제학부(0%→8.3%) 이과생 합격자 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부산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경제·경영 같은 상경계열은 그나마 이과와 관련 있지만 어문계열 등의 교차지원자는 대부분 진로보다 대학 간판을 보고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정시전형에서 이과생 강세와 교차지원 증가는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융합인재를 키우자는 취지로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수능과 성적 산출을 통합하면서, 상대적으로 수학이 강한 이과생들에게 유리한 조건이 갖춰졌다. 입시업계는 지난 수능에서 수학 1등급 중 90% 가까이가 ‘미적분/기하’ 선택자(이과생)인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점수라면 교차지원할 경우 더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자 상당수 이과생이 이를 기회로 활용했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서울 중위권 대학 자연계에서 고려대·연세대 인문계로, 지역 주요 대학 자연계에서 수도권 상위권 대학 인문계로 교차지원해 합격한 사례가 다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정책 의도와 달리 입시결과가 왜곡되면서, 학과 부적응이나 재수(반수)생 증가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이과생들이 교차지원을 통해 합격대학 수준을 상당히 높일 수 있었지만, 문제는 이들이 다시 반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며 “통합수능 2년 차에서도 이런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에 현 입시체제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시교육청 권혁제 중등교육과장은 “이과생들 사이에 학습이 되면 내년에는 다른 대학까지 확대해 교차지원자가 더 몰릴 가능성이 있다”며 “2028학년도 대입개편 때까진 같은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포인트 개편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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