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동계올림픽과 인공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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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을 인위적으로 만들 순 없을까. 인간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올림픽 때문이다. 물론 겨울철 스포츠 축제인 동계올림픽을 말한다. 빙설의 인공적인 조성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이 처음이었다. 당시 군대가 동원돼 2만 개의 얼음덩이와 4만㎥에 달하는 눈을 공수해 경기장을 만들었다. 기계로 눈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80년 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때부터다. 이후 인공눈은 동계올림픽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는다.

2011년 국내에서도 인공강설 기술 개발 주장이 나왔다. 그해는 독일 뮌헨을 제치고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때였다. 당시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평창 대관령면의 기온이 지난 10년간 0.6도 상승했고 눈의 양은 10.8cm가량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대회가 성공하려면 인공눈을 뿌리거나 비구름의 접근을 막는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 치러진 평창 동계올림픽은 90%를 인공눈으로 채웠다. 앞선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선 80%가 인공눈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모든 경기에 100% 인공눈을 쓰고 있는 것이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이다.

인공눈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물과 함께 제설기를 돌릴 막대한 에너지 전력이 필요하다. 이번 올림픽에 동원된 제설기는 300대에 달하는데, 중국은 여기에만 6000만 달러(약 717억 원) 이상을 들였다고 한다. 인공눈을 만드는 데 쓰이는 물의 양은 약 2억L에 가까운 규모로, 1억 인구가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과 맞먹는다.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 중국의 역설이다.

인공눈은 얼음처럼 쉽게 딱딱해져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도 크게 높인다.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속절없이 넘어지고 다리를 다치거나 완주에 실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또 수명을 늘리려고 물에 화학물질을 첨가하는 인공눈은 생태계에도 큰 피해를 준다.

동계올림픽 기간에 맞춰 인공눈의 사용이 지구 환경에 매우 위험하다는 경고가 최근에 잇따르는 건 그런 이유다. 특히 CNN의 보도는 암울하다. 21세기 말이면 올림픽 개최에 적합한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올바른 대처가 없으면 이제 동계올림픽도 열릴 수 없다는 뜻이다. 지구촌 최대의 눈과 얼음의 축제가 인류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시험대가 됐다. 인공눈을 바라보는 시각을 올림픽이 아닌 지구 전체로 넓혀야 할 때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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