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공공도서관은 민주주의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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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의 말이다. 몇 년 전에 ‘영화의 전당’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공공도서관’을 보다 접한 뒤에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최근에 이 영화를 구해 다시 보면서 한 디렉터가 공공도서관의 위상과 역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인용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의 설명대로 뉴욕공공도서관은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시민을 위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와 지식, 문화와 예술, 배움과 연구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위하여 사서, 행정가, 큐레이터, 기록보관원, 연구원, 민간 위원 등이 각기 맡은 역할에 따라서 많은 일을 수행한다. 본관은 특성화된 분관과 기록 보관소, 혁신 연구소 그리고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 연구 기능을 지닌 센터 등을 연계한다. 모두 어떻게 하면 시민을 위한 최상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뉴욕도서관
누구나 평등하게 지식·정보 취득
시민 정보 격차 해소 위한 노력도

민주주의 한계 봉착 우리 사회
미래지향적 공공도서관 사상
청년·학생과 함께 숙고했으면


무엇보다 전문 사서의 역할이 뚜렷하다. 도서 대출, 책 소개, 디지털 서비스, 자료 전시, 어린이 문해 교육, 독서 클럽, 북 토크, 컴퓨터 교육, 시각 장애인의 읽기와 쓰기, 청각 장애인 공연 통역, 직업 소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이들은 도서관이 어떠한 사회적 목적을 지니는 기구인가에 대한 사상과 철학을 확실하게 견지하고 있다. 인종, 젠더, 계급, 세대를 떠나서 사람들이 모두 평등하게 지식과 정보를 취득할 자유가 있음을 안다. 관장이나 민간 위원회는 이와 같은 도서관 사상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혁신을 토론하고 실천한다. 시민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고 정보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기획하며 기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를 위하여 책과 디지털의 변환이 실시간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확보하고 시민에게 제공한다. 심지어 노숙자 방문객의 독서 활동을 정책적 과제로 고민하고 있으니 공공도서관은 누구든 환대하는 평등 사회라 하겠다.

아직 우리 사회는 뉴욕공공도서관과 같은 체계를 가지고 있진 않다. 디지털 통합을 지향하는 뉴욕은 도시 목표에 따라서 공공도서관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 공공도서관의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고, 어린이 도서관, 사진을 위시한 기록 도서관, 공연예술 도서관, 디지털 도서관, 점자와 음성 도서관 등의 특성화가 이뤄져 있다.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 폰 등 모든 전자기기를 접속할 여건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와 공연, 북 토크와 강좌, 독서 모임 등을 상시로 개최할 공간이 있다. 도서관을 민주주의의 척도로 본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시민의 지식과 문화 향유를 위하여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민주적인 기구는 없다고 생각한다.

토니 모리슨의 말을 숙고하면서 우리 사회가 도서관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병원과 공장이 도서관과 같을 수는 없다. 학생에게 등록금을 부과하고 환자에게 병원비를 요구하며 노동자에게 임금에 따른 노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교는 달랐으면 하지만, 여전히 대학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공부를 위하여 빚을 져야 하는 환경에 시달리는 청년이 얼마나 많은가? 청년을 생각하다 네이선 로빈슨이 쓴 <밀레니얼 사회주의 선언>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가난한 세대의 좌회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미국의 젊은이나 한국의 젊은이나 유사 이래로 가장 똑똑한 세대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하여 가난하다. 이러한 점을 간파한 저자가 이윤 추구에 급급한 미국 사회에서 그나마 공공도서관이 가장 급진적인 장소로 존재하고 있는 사실을 웅변한다. 그가 말하듯이 공공도서관은 사람들이 가진 부와 상관없이 모두를 위한 곳이다. 그는 민영화가 이러한 장소를 끊임없이 없애면서 돈이 지배하는 사회의 고통이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 현실을 분연히 비판한다. 진보적 청년의 눈 밝은 지적이다.

밀레니얼 세대로서 사회주의를 선언한 미국의 청년 네이선 로빈슨처럼 나도 공공도서관을 사회 혁신의 장소로 사유한다. 이런 생각을 이어가는 가운데 도서관 운동가 신남희의 책 <다 함께 행복한 공공도서관>을 읽으면서 공공도서관이 민주주의의 산물이며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가장 중요한 공공기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에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회운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학생, 지식인, 시민 사회가 건강하게 정치권력의 대안 세력으로 존재하면서 사회를 추동하지 못한다. 운동이 소멸하고 정파에 흡수되면서 변화에 대응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길이 막혔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 학생과 더불어 미래지향적인 공공도서관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숙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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