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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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 동의대 일본어학과 교수 동아시아연구소장

일본 정부는 당초 예상과 달리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강행하고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당초 등재 후보 추천을 보류할 계획이었다. 조선인 강제 노역에 대한 사실을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하는 한국 정부의 반발 움직임으로 등재 추진에 난항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보수파의 비판에 밀려 추천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2015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추천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는 조선인 강제노동 문제를 제기하며 후보 추천을 반대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이들 각 시설에 대해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사후 조치를 마련하라’고 일본에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이들 시설에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던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인포메이션센터와 같은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작년 7월에 개최된 제44차 회의에서 일제강점기 징용 조선인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일본의 세계유산 관리 방식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번 사도광산을 등재 후보로 추천하는데 있어서 일본 정부 내의 신중론이 나온 것도 심사에서 당시의 약속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조선인이 동원되어 혹사당한 비극의 현장이다. 조선인이 사도광산에 동원되기 시작한 시기는 1939년 2월이다. 이때부터 태평양전쟁(1941∼1945년)이 끝날 때까지 적어도 연인원 2000명 정도의 조선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니가타현과 사도시가 일본 문화청에 제출한 사도광산 추천서에는 대상 기간이 에도시대로 한정하여 일제강점기는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중에 있었던 일은 이번 추천과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폭넓은 사회·역사적 배경을 반영해야 하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조건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 내에서도 야당 소속의 일부 의원과 양심적인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반성과 각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미디어에서도 이번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을 비판하고 나선 상황이다. ‘세계문화유산은 일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어야 하며 그 보편적 가치를 국제사회와 공유하여 후세에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세계문화유산의 보편적 가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 가동에 들어갔다. 우리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약속 불이행 지적을 받고도 또다시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 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일본에 대한 다양한 외교 채널을 열어두고 유네스코 가맹국과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국의 입장을 설득하면서 공조 확보를 위한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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