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발리예바와 ‘트리메타지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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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무 현 동아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지난주 베이징 동계올림픽대회 중 여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다가 관심이 가는 대목이 있었다.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스타 카밀라 발리예바 선수의 도핑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이슈였다. 해당 금지약물은 흥미롭게도 우리 순환기내과에서 협심증 치료제로 비교적 흔히 사용하는 ‘트리메타지딘(상품명 바스티난)’이었다. 이 약물이 도핑 금지약물에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고, 기존 도핑 약물로 많이 적발되던 호르몬류의 근육강화제와는 전혀 다른 약물이었기 때문에 피겨선수가 왜 이 약물을 복용했을까 하는 의아한 점도 없지 않았다.

대부분의 협심증 약물이 심박 수나 혈압 강하 또는 혈관 확장을 통해 협심증의 증상을 직접적으로 완화시키는 데 반해 트리메타지딘은 에너지 대사 조절을 통해 지방산의 산화를 억제시켜 심근의 에너지 소모를 감소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항 허혈작용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협심증 치료약물로서는 약간 천대받는 2차 약물이기도 하고 특별히 효과를 기대하기 보다 한약의 감초와 같은 느낌으로 처방한다. 1970년도부터 사용되던 약물이고 어지럼증 등에 사용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협심증 치료에서 1차 약물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경우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대규모 임상연구에서는 1차 약물에 트리메타지딘을 추가로 투여 했을 시 1차 약물 단독 사용에 비해 심혈관질환의 합병증 발생에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보고된 바 있다(2020년). 하지만 심부전환자에서는 효과가 인정되는 몇몇 보고들이 나오는 등 복용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도핑 양성과 출전에 대한 어정쩡한 판정으로 피겨 개인전이 치러졌고, 발리예바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수를 연발했다. 이 약물은 2014년 중국 수영 선수 쑨양이, 2018년에는 미국의 여자수영 선수인 매디신 콕스도 양성 판정을 받아 제재 받은 사실이 있다고 한다.

이론적으로 이 약물은 지구력을 요하는 운동에 효능을 기대해 볼 수 있겠지만, 15세 소녀의 피겨에 과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까? 금지약물 리스트는 아니지만 동시에 복용한 것으로 드러난 하이폭센이나 L-카르니틴(L-carnitine)도 세포의 에너지 대사나 미토콘드리아 기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지만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약물들이다. 이 약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미국반도핑기구 트래비스 타이가트 회장은 “이 3가지 약물을 조합하면 몸의 피로도는 줄이면서 지구력을 높이고, 산소사용을 효율적으로 한다”고 했지만 스포츠 생리학자인 벤자민 르빈 미국 텍사스사우스웨스턴의대 교수는 트리메타지딘이 발리예바의 연기력을 개선시켰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한다. 최우수 선수진이 포진한 러시아 피겨 팀의 에트리 투트베리제 코치를 비롯한 주위의 과욕에 또 한 명의 스타가 피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지는구나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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