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눈물의 나라는 참으로 신비로웠다*/원양희(1971~ )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별들이 커다랗게 보이는 곳입니다 별빛이 우렁우렁 소리라도 칠 것 같습니다 더 바랄 것 없는 밤입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어디를 지나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아주 먼 곳의 꽃향기도 맡을 수 있을 듯 합니다 흐르고 흐르는 것 무한함을 생각하면 언제나 눈물이 났습니다 이 끝없는 허무 이 끝없는 사랑스러움을 무어라 해야 할까요 속 깊이 박혀있는 슬픔을 꺼내봅니다 이제 이 슬픔도 천천히 흘러가게 하고 싶습니다

멀리 스러져가는 별들의 행적은 누가 알까요 아득히 되뇌어 보는 이름도 닿을 곳이 없습니다 그리움은 참으로 고되고 참으로 벅찬 일입니다 겨울 은하수만큼 어둡고 환합니다 쓸쓸하게 지내온 날들을 생각합니다 그래도 더 가벼워져야 되겠지요 그래도 사랑을 멈출 수 없겠지요 차갑고 막막한 밤을 지새우는 일에 대하여 호수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밤새 쩡쩡 얼음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생텍쥐페리 중

-시집 (2021) 중에서


사십계단이 있는 중앙동 뒷골목은 팔구십년대 문학과 출판의 거리였습니다. 군부시절 문학잡지들이 폐간되고 무크지 시대를 맞이하자 새 출판사들이 중앙동 골목 어귀에 생기고 문민정부 이후 문학잡지들이 부산에서도 발행됩니다. 돈이 안 되는 문학 출판업을 하면서 그만둔다고 여러 번 다짐하면서도 삼십 년 넘게 남편의 곁을 지켜온 한 여인이 덜컥 시인이 되어 주위를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낸 첫 시집이 많은 선배 시인들을 눈물짓게 합니다. 중앙동 뒷골목을 삼십 년 넘게 지켜본 이력이 시적 내공이 되었을까요. 끝없는 허무와 끝없는 사랑스러움이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는 걸 알아챈 시인은 말합니다. ‘그리움은 참으로 고되고 참으로 벅찬 일입니다.’ ‘빛남’과 ‘지평’과 ‘전망’이 만나는 눈물의 나라, 그렇게 그리움은 끝없이 쌓여갑니다. 이규열 시인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