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과의 거리요? 그건 ‘적당한 친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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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박규옥

인문학을 전공한 박사 학위 소지자가 어릴 때부터 꿈꿔오던 ‘동네 점방’의 주인이 됐다. 에는 친절하려고 애쓰진 않지만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장사한다는 저자가 동네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겪은 담백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듯하다.

‘온종일 카운터 안에서 벗어날 일이 없는 나는 손님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혼자 웃는다. 죽을 것처럼 힘들다가도 사소한 행동 하나 때문에 웃고 살 수 있는 것. 가게 안에서의 삶이 그렇다.’

편의점 운영하며 겪은 담백한 이야기
야심·허세 없이 살고 싶은 의지 읽혀

남녀노소 누구나 오가는 편의점 점주의 시점에서 본 손님 등 주변인들의 이야기는 세상사의 축소판이다. 모두 잠든 밤에 깨어 낮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파도 쉬지 못할 처지의 배달 기사도 있다. 시작하는 연인들, 남들 눈 피해 다니는 불륜 커플부터 외롭게 살아도 자존심 꿋꿋한 노인들까지, 관심을 갖고 보면 손님들 각각의 사연들이 보인다. ‘오지랖 넓고 세상사 관심 많은 성격이다 보니 손님들과 가까워질 기회도 많지만 장사꾼은 손님과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속 편하고 적당히 친절해야 스트레스가 없다는 영악한 진리를 깨달았을 정도로 나는 노련한 장사꾼이 된 것이다.’

저자는 장사하다 보니, 손님들과는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한다는 영악한 진리도 깨달았으며 상식 수준의 예의를 갖추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친절은 베풀지 않겠다는 철학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가게의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한다고. 신선하고 좋은 물건, 증정품 많은 물건들을 찾아내 파는 것이 편의점의 업무이고, 그걸 보고 손님이 찾아오면 되는 것이지 굳이 알바생들의 과도한 친절을 유도해 장사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가끔은 손님에게 비굴하게 행동해야 하나 갈등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때때로 야박하고 때때로 불친절하다. 밤낮없이 근무하는 편의점 일을 하면서 부당하게 듣는 욕을 참아야 할 정도로 비굴할 필요가 있나.’

편의점을 운영하며 때로 손님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편의점 고객 중엔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진상’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각종 갑질 손님에 시달리면서도 대부분은 참고 누르며 넘어가지만 임계치를 넘기는 사건이 생길 땐 한 번씩 거칠게 포효한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일터로 나오는 것이 즐겁고, 남들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자 주변 사람들에게도 너그러워졌다. 편의점 일이라는 게 육체 노동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고 나면 늘 기분도 맑아진다.’

야심이나 허세 없이 되도록 단순하게 살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는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좋아하는 이웃, 손님들과의 단순한 교류를 즐기며, 주변의 아픔에 매몰차게 눈 감지 않는 온정 어린 마음으로 오늘도 편의점 문을 연다. 쿨하면서도 때로 소심해서 인간적인 편의점 점주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박규옥 지음/몽스북/288쪽/1만 5800원. 천영철 기자 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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