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이야기꾼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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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34년(호적상)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시대의 이야기꾼으로 불렸다. 1990년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이 됐으며, 국립국어연구원·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4대 사업으로 문화정책의 기틀을 마련했다.

암 투병 이어령 교수 26일 별세
언론인·교수·장관 역임하며
융합과 조화의 한국 문화 탐색
마지막까지 철저한 인문학자

고인은 20대 초반인 1956년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하는 ‘우상의 파괴’를 신문 지면에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1972년에는 월간 을 창간하고 1985년까지 주간을 맡았다. 또 고인은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본을 집필, 개막식에서 ‘굴렁쇠 소년’을 연출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인은 (1960), (1984), (1986), (1987), (2010)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아울러 등 소설과 희곡, 시집 등도 펴냈다. 고인은 2006년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에서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세상을 말하며, 비빔밥과 같은 우리 문화와 정서가 가진 조화의 힘을 이야기했다.

고인은 2009년부터 10년에 걸쳐 를 집필했다. 책을 쓰던 중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는 2019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알렸다. 당시 고인은 2012년 암으로 사망한 딸 고 이민아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고인은 지난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2021년 10월에는 고인과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 담긴 이 출간됐다. 책에서 고인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 삼원론으로 삶과 죽음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남송우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은 “이어령 선생은 따님이 죽고 난 뒤에 기독교로 개종하셨고, 이후 영성을 중시하는 글들을 많이 남기셨다”고 말했다. 남 관장은 지난 9일 생전의 고인과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 요절한 천재 비평가 고석규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고인은 고석규 선생과 현대평론가협회 동인으로, 전후세대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남 관장은 “몸이 불편하신 중에도 귀한 시간을 내주셨다”며 “이어령 선생의 육성은 문학관에 보존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교수가 있다. 장남 이승무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부친께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6일 낮 12시 20분 자택에서 큰 통증없이 돌아가셨다”며 “유언은 따로 남기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한국 최고의 지성에 대한 추모도 이어졌다.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박학다식함은 물론이고 그분의 천재성은 놀라운 아이디어 박스에서 나왔다”며 “독서를 엄청나게 하셨는데 이 어른만큼 모든 걸 통섭할 수 있는 분은 보지 못했다”고 고인을 회상했다. 20여 년간 고인과 친분을 쌓은 김병종 화가는 고인에 대해 “철저한 인문학자셨다”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속적인 언급 없이 책에 대한 말씀이나 인문학적 화두를 이야기하셨다”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장례는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내달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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