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개헌으로 87체제의 강을 건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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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3년째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이전의 일상이 그리워진다. 행복하고 안전한 일상은 민주국가에서 헌법으로 보장된다. 그래서 루소는 헌법을 ‘국민의 집’이라 했다. 이런 맥락이라면 헌법은 국민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담은 집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미국 제헌헌법 초안 작성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헌법이 미국인들에게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당신은 스스로 행복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즉, 국민의 삶과 행복에 미치는 헌법의 영향과 국민참여가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미·프·독, 수시로 헌법 개정
우리는 35년째 낡은 집 그대로
시대정신·전환기적 과제 누락

국민발의로 직접 민주주의 허용
자치분권 국가 선언·자치권 명문화
균형발전 가치 적극적 반영해야


우리 헌법의 공화국적 법통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잇는다. 전문에 나오는 것처럼 ‘불의에 항거한 대한국민의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있다.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은 국민주권·연방주의·삼권분립 등 중요한 원칙을 담고 있으며, 시대적 변화에 따라 중요한 사항을 개정하여 헌법에 반영한다. 프랑스 헌법은 1789년 인권선언, 1946년 보완된 인권과 국민주권뿐 아니라, 2003년 22번째 개정으로 전문에 지방분권화를 명문화하였다. 2004년에는 환경헌장에 정의된 권리 및 의무 준수를 전문에 담았고, 작년에는 기후변화 대응까지 시도한 바가 있었다. 아직도 기본법이라는 이름의 독일 헌법은 1949년 공포 이후 최근까지 60여 차례 이상 수시로 개정되었다. 전문에 이어 인간 존엄성과 불가침·불가양의 인권 등 기본권으로 시작되며 연방국가답게 연방과 주(州)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게 기술되어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 이래 대통령 권력욕에 의한 개정(1, 2, 5, 6, 7, 8차)과 민중의 직접적 항거가 있었던 1960년 4·19혁명 직후 개정(4, 5차),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9차 개정의 경로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중 이승만의 집권 연장을 위한 발췌 개헌 및 사사오입 개헌, 박정희 장기 독재의 유신헌법,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도한 전두환의 5공화국 헌법 개정은 모두 권력자에 의해 그릇되게 시도된 ‘흑역사’이다. 현행 헌법은 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무려 35년째 한 번도 개정을 못 한 낡은 집이다. 이후의 시대정신과 가치를 담지 못한 전문, 새로운 국민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할 국민기본권·지방분권과 자치·균형발전의 내용 미흡, 지속가능성·생태환경·기후변화 같은 전환기적 과제 누락 등 너무 남루하고 심하게 해어진 옷이다. 경제력 세계 10위, 높아진 민주화 수준에 맞지 않는 구식의 헌법 체제인 것이다.

낡은 87체제의 강을 넘어서기 위해서 개정되어야 할 헌법의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는 기본권과 국민주권의 강화이다. 우선은 4·19혁명 이후 민주주의 확장의 토대가 된 부마민주항쟁 등 중요한 역사와 더 발전된 인권 및 기본권을 반영한 전문의 개정이 필요하다. 헌법 제2장 기본적 권리와 의무에서는 차별 시정 및 참여, 그리고 사회권적 국민기본권 강화라는 현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처럼 국민헌법 발안권을 명시하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50분의 1 이상 발안 후 1년 내 투표 및 의결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해야 한다. 비례적 대표의 선거제, 정당 공천의 민주성, 권력 구조에 대한 국회 및 국민의 숙의·합의 과정이 헌법에 명기되어 국민주권 가치가 실질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둘째는 자치분권의 강화이다. 프랑스처럼 전문에 자치분권 국가 선언이 필요하고 국민과 주민의 자치권을 명문화하여야 한다. 일본 잔재가 녹아든 지방자치단체 및 조례가 아닌 지방정부, 지방정부 법률로 개정되고 지방정부의 입법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헌법 제8장에서 지방정부 자치권이 주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주민의 지방정부 조직, 운영, 참여의 권리 보장, 주민발안·주민투표·주민소환의 법률 사항 명기, 사무에서 지방정부 우선의 보충성 원리 규정 등이 신설되어야 한다.

셋째는 균형발전 가치의 적극적 반영이다. 헌법 제9장 경제에서 지역 간 균형발전에 대한 적극적 조문이 필요하다.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항을 위한 법률적 제한 및 의무 부과조항을 신설하고, 대재벌 중심의 체제 혁신을 위해 중소기업과 상공인 보호·육성과 사회적 경제 진흥도 신설해 균형발전의 국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루소는 “시민은 투표일에만 자유롭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간다”고 하여 대의민주제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러나 실질적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기 인권선언 초안을 작성한 에마뉘엘 시에예스의 언급처럼 국가 이전에 존재하고 국가의 기원이며 헌법을 제정할 권리의 주체인 국민이 중심이다. 내일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차기 정부가 개헌으로 87체제의 강을 국민과 함께 건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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