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균형발전, 노무현·박근혜에게 배워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에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인수위 내에 지역균형발전을 전담하는 조직이 생긴 것은 처음이다. 대선후보 시절 지역 이슈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은 윤 당선인이 이런 결단을 내린 배경은 뭘까?

윤 당선인은 지난 13일 인수위원장 선임 발표를 하면서 “우리 국민은 어느 지역에 사느냐와 관계없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며 “제가 약속드린 지역공약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새 정부 국정과제에 반영시키고, 국민들이 어디에 사시든 기회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면밀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선거 캠페인을 위해 전국을 도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만과 요구사항이 지역별로 분출되자 문제의식을 느꼈고, 해법을 찾기 위해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특단의 대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지역공약 이행이 균형발전’이란 생각 잘못
균형발전,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자 가치

불균형 없애려 수도권과 싸운 노무현·박근혜
정치적으로 손해봐도 겁내지 않고 정면돌파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의 브리핑에서도 그런 뜻은 재확인된다. 그는 “윤 당선인이 우리 당 소속 광역단체장들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진지한 접근과 해법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고 (설치를)결단했다”며 “전국에 산재한 지역 주민의 목소리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듣지 않고 수렴해 국가균형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게 당선인의 의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발언들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은 과연 윤 당선인이 지역균형발전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이다. 윤 당선인의 언급에 따르면 ‘국민이 어디에 살든 기회의 불이익을 받지 않는 것’이 지역균형발전이라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고 옳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나라를 골고루 발전시키겠다는 언급을 하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다. 역시 중요한 것은 ‘어떻게’인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윤 당선인의 발언에서 비치는 ‘어떻게’가 너무 순진하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은 “제가 약속드린 지역공약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새 정부 국정과제에 반영시키고…”라고 밝혔다. 이 말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자신의 지역 공약이 어김없이 실행되는 것이 곧바로 지역균형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윤 당선인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충청이 잘되고 호남이 잘되는 것이 영남이 잘되는 것이고, 또 영남에 아직도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부분들이 잘 되는 것이 그게 바로 충청과 호남이 잘되는 것이고, 강원과 제주가 잘되는 것이고, 그게 수도권이 잘되는 것이고,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입니다.” (2월 22일 충남 당진 당진시장 유세)

지역마다 골고루 발전하면 나라 전체가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상생’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저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대한민국 지역균형발전의 본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해소이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수도권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뚫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윤 당선인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부르면서 높게 평가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키는 자세, 패배하더라도 당당하게 맞서는 소신이 부러웠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을 했지만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다. 재벌기업, 주류 언론, 중앙관료 집단 등 수도권 중심 세력의 몽니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 투쟁 없이 수도권과 상생하기 위해 타협했다면 지금의 균형발전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런 현실을 잘 알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극한 투쟁을 벌였다. 의원 1명이 의원직을 사퇴했고, 또다른 의원은 단식투쟁을 하다 병원에 실려갔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이자 박 전 대통령은 평의원 신분으로 국회에서 직접 반대토론에 나서 무산시키기도 했다. 부족하나마 오늘날 균형발전이 이 정도의 싹이라도 틔운 것은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면서도 수도권 기득권과 맞선 두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균형발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자, 가치이다. 국정을 운영하는 방향이면서 목표이다. 지역마다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중하고, 주민들의 편의에 도움되는 시설을 만드는 것은 균형발전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윤 당선인이 이루겠다는 균형발전도 수도권과 싸워서라도 가져올 것은 가져오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먼저다. 균형발전은 각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불균형의 근원인 수도권의 기득권을 없애는 것이다. psh2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