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요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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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갓생을 살아.”

큰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말한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다. 아이들과 있으면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신조어를 듣게 된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물으면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는데 그 설명도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심지어 아이들조차도 모르고 쓰는 말도 있다. 그런 말을 어디서 배우는 걸까? 아마 방송이나 유튜브, 게임인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시간을 대부분 그것에 매달리니까. 그걸 노는 거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서도 나의 정의는 흔들린다. 나는 노는 것이라고 하면 신체 활동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아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바깥 놀이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그럴 것 같다.

말을 줄여 합성 변형하는 신조어들… 줄이는 것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늘이는 것도 잘하는 우리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에는 속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쉼과 이해와 배려도 있기 때문이다.
 
 

갓생은 신을 의미하는 ‘God’와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아, 그런 뜻이구나 싶다. 신조어는 늘 생겨났다. 거기에는 지금 여기의 삶을 반영하는 발랄함이 있다. 한때는 이런 신조어를 외계어로 말하며 거부감을 느끼거나 문제라고 인식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그런 말들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만든 이들의 재치와 여유, 우리가 사는 시대와 상황에 대한 포착에 감탄하기도 한다.

슬세권은 슬리퍼를 신고 편하게 나갈 수 있는 범위를 말한다. 당모치는 당연히 모든 치킨은 옳다는 말이다. 오저치고는 오늘 저녁 치킨 go라고 한다. 저메추는 저녁 메뉴 추천 좀이라는 뜻이다. 머선129는 무슨 일이냐는 사투리에 숫자를 섞은 표현이다. 이렇게 신조어는 말을 줄여 합성하는 형태, 변형하는 형태로 많이 만들어진다. 좀 더 전문적인 신조어도 있다. ‘#TAGnity Marketing 태그니티 마케팅’은 해시태그와 커뮤니티를 합성한 단어로 소셜 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통해 관심사를 공유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을 말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말들에 나는 소속감보다는 배제의 감정을 느낀다. 이런 말들에 뒤따르는 말 때문이다. “그것도 몰라요?”

나는 대부분 모른다. 언제부터 모르는 것이 약간의 조롱이나 부끄러움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 모른다는 내 말에 아이들은 답답해하고 우리 사이에는 거리가 발생한다. 솔직히 벌써부터 가망 없는 노인네, 꼰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쓸쓸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미 그쪽으로 기울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백하자면 이 무수한 신조어들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단어를 알게 되거나 그것의 쓸모를 발견할 때의 기쁨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때는 그것을 열렬히 탐했던 시절도 있었다. 대학 때 어떤 선배는 나보다 더해서 순우리말 국어사전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얼마나 아름답고 새로운 단어를 발견하는가를 경쟁했다. 그 선배는 내내 아름답기를, 내내 건강하기를, 내내 고요하기를 에서 ‘내내’라는 말을 좋아했다. 그때 나는 거스름돈을 우수리라는 순우리말로 썼다. 잔돈보다 예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글에서 숨어있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어려운 순우리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의 문학이 빈약해졌는가 하면 아니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더 확장된다. 뒤놀다라는 단어는 한곳에 붙어 있지 않고 이리저리 몹시 흔들리다로 문장으로 풀어쓴다. 충분히 아름답고 알기도 쉽다. 설먹다 대신 넉넉하게 먹지 못했다고 쓴다.

나는 아이들이 그것도 몰라요? 라고 말하는 대신 그렇게 길게 풀어서 설명해주면 좋겠다. 줄이는 것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늘이는 것도 잘하는 우리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말과 글에는 속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쉼과 이해와 배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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