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MB 사면 놓고 신구 정권 ‘삐걱’… 국민통합 가는 길 ‘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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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 회동 무산 이유·향후 전망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회동을 불과 4시간 앞두고 만남을 취소하는 유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나겠다고 발표해 놓고 회동이 불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람 모두 대선 직후 ‘국민통합’을 내세우면서 선거 과정에서 분열된 민심을 봉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회동 무산이 갖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당선을 축하하고 원활한 정권 이양에 필요한 협력을 다짐하는 자리가 파행하면서 신구 정권의 갈등이 노출됐고, 가뜩이나 쉽지 않아 보였던 협치가 더욱 어려워졌다.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양 측 모두 순조로운 권력 이양과 새 정부 출범에 적지 않은 부담을 갖게 될 전망이다.

한은 총재 인사·동반 사면 놓고
양측 ‘불협 화음’ 노출 가능성
겉으로는 “실무 협의 안 끝났다”
재추진 빨라도 다음 주에나 성사
갈등 봉합 안 되면 협치 힘들어져


■회동 무산, 무슨 일 있었나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은 회동이 무산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양측 모두 ‘실무적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대선 이후 가장 중요한 정치 이벤트가 ‘실무적’ 이유로 취소됐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정치권에서는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정권 말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는 물론,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특별사면 문제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회동 불발로 이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이뤄질 공공기관장 등의 인사는 청와대가 자신들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이 윤 당선인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청와대에서는 임기 내에서의 인사권은 문 대통령이 당연히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론을 견지하고 있다.

특별사면 문제 역시 점점 꼬여갔다. 윤 당선인이 회동에서 문 대통령에게 MB 사면을 건의하면 문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동반 사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주고받기식’ 사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서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배석자도 없이 단독으로 만날 경우 오히려 그동안 쌓인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측 협상 실무진의 정무적 판단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논의할 의제를 제대로 조율해 놓지 않고 회동 일정을 성급하게 발표하는 등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모두 직설적인 데다 다혈질이어서 정권교체기의 민감한 이슈를 다루기에는 적절치 않은 인사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거기다 축하와 덕담이 오가야 할 첫 회동에 지나치게 많은 정치적 의제를 올려놓아 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회동 재추진 전망과 파장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 단기간에 다시 잡힐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나 우리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주 후반 외부 일정과 윤 당선인의 인수위가 주말에 현판식을 갖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빨라도 다음 주에나 회동이 성사될 수 있다.

정권교체기를 맞아 힘겨루기가 본격화하면서 문 대통령이나 윤 당선인 측이 공언했던 ‘정부의 원활한 인수인계’는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31일 임기가 끝나는 한국은행 총재의 인선을 그냥 원칙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인사가 그대로 진행되면 청와대와 당선인 측 대립이 더 격해질 우려가 있다.

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두 달 동안 이 같은 신구 권력 간 극한 대치가 해소되지 않으면, 정치권이 진영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긴다는 비판에 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강조해 왔던 국민통합이 점점 멀어지는 것은 물론 나아가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국정운영 동력 확보에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문 대통령도 퇴임 후 가뿐한 마음으로 귀향해 ‘잊혀지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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