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진실 혹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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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국 (1973~ )

남자에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는 나무



협상을 합시다



내 수중엔 이틀을 버틸 술값이 있고 당신은 나와 흥정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는 오래 살고 싶고 명예를 갖고 싶으며 후손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소 단,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빈틈없는 제안이었다



(중략)



세월은 흘렀고

남자는 헌책방에서 간간이 펼쳐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완벽한 거래였다

ㅡ합동시집 (2021) 중에서


현대 시인들은 누구라도 김수영이나 백석은 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시인이 수만 명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신예 시인들의 반복. 끝없는 반복 속에서도 시인과 시는 무수히 새로 태어난다. 이 현상은 이 시인의 언술대로 ‘진실 혹은 거짓’ 사이를 왕래한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를 담당했던 시인들의 시집들은 ‘헌 책방에서 간간이 펼쳐진다는’ 이야기로 남았다. 경남 고성에서 연탄불고기집을 한다는 이 시의 시인은 시를 쓸 뿐, 등단도 첫 시집 출간도 별 관심이 없다. 이런 시인을 만나면 늘 지는 느낌이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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