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약탈 유물 반환은 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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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부 선임기자

유럽의 일부 박물관에서 이색적인 변화의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외국에서 약탈하거나 훔쳐온 유물을 원래 소유국가로 되돌려주는 흐름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의 헬싱키국립박물관은 미국 애리조나 주의 인디언인 호피 족과 푸에블로 족 등에게 유물과 유해를 되돌려주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오밤보 왕국에는 ‘권력의 돌’을 반환했다. 벨기에의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일부 유물은 콩고민주공화국로 돌아갔다. 독일, 미국의 여러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유물 여러 점도 원래 주인이었던 나이지리아에 반환됐다.

아직 일부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박물관들이 유물 반환에 적극 나선 이유는 최근 박물관의 활용 방법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가진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관람객을 교육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길을 택하는 곳이 늘어난 것이다.

이제 관심을 끄는 곳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처럼 유물을 대거 빼앗아간 나라들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은 800만 점에 이르는 세계 각국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 세기동안 원래 소유국가에 반환해야 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유물은 19세기에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에서 뜯어온 대리석 조각인 ‘엘긴 마블스’다. 또 비슷한 시기에 나이지리아의 왕궁에서 약탈한 청동 조각과 명판인 ‘베냉의 청동’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약탈하거나 기증받은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2018년 프랑스의 세네갈 전문가인 펠윈 스타와 예술사학자인 베네딕트 사보아는 공동으로 만든 보고서에서 ‘프랑스의 여러 박물관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빼앗아온 수천 점의 유물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외국에서 약탈해온 유물의 소유권은 박물관이 갖고 원래 소유국가에 장기간 빌려주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거꾸로 소유권은 돌려주는 대신 박물관이 장기 임대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이런 나라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애써 외면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작은 박물관에서 시작한 변화의 물결을 이들이 무한정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에는 유물 약탈이 삶의 한 방식이었다’는 식으로 상황을 얼버무리려는 이들의 변명이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는 점을 감안하면 해결의 실마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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