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두고 구청마다 내걸린 ‘공치사’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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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일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청사 건물에 기초단체장 성과를 드러내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내걸어 다가오는 지방선거를 겨냥한 과도한 홍보라는 비판이 인다. 무분별한 현수막 게재는 옥외광고물법 위반 소지도 있는데, 불법 현수막을 관리·감독해야 할 지자체가 스스로 법을 위반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몇몇 지자체는 법규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황급히 현수막을 철거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24일 부산지역 16개 구·군청을 확인한 결과 해운대구청, 남구청, 서구청, 연제구청 등 일부 지자체가 구청 건물 외벽에 구정 홍보용 현수막을 내걸었다. 해운대구청은 청사 4층 높이에 5개의 가로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공공기관 부패방지 시책평가 2회 연속 최우수 기관’ ‘해운대구 신청사 건립 중앙투자심사 통과’ ‘도시철도 오시리아선 연장 승인 환영’ ‘전국 최초 장산 구립공원 지정’ 등의 내용이었다.

청사 건물에 기초단체장 치적 홍보
주민 표심 노린 과도한 전시 행정
대다수 구·군, 2개 이상 현수막 걸어
한 달 내 1개만 내걸도록 법 규정
“관리·감독할 지자체가 법 위반”

남구청의 경우 ‘2021년 지자체 회계대상 전국 1위’ ‘지역일자리 창출 분야 행안부 장관상 수상’ ‘대한민국 1호 트램 남구에서 출발’ 등 3개의 현수막을 청사 외벽에 걸었다. 연제구청은 ‘민원서비스 종합평가 2년 연속 최고등급’ ‘공공기관 내부청렴도 전국 1위’ ‘부패방지 시책평가 부산시 최우수’ 등의 내용을 담은 대형 현수막 1개를 청사 외벽에 붙였다. 서구청도 의료관광특구 지정과 관련한 현수막 2개를 내걸었다.

현행법은 국가 등이 개최하는 행사나 주요 정책 등을 홍보하기 위해 청사 또는 건물 벽면에 30일 이내 동안 현수막 1개를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부산지역 일부 지자체는 설치 개수 제한을 어기고 2개 이상의 현수막을 걸거나, 30일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런 현수막 제작에 많게는 개당 120만 원에서 적게는 30만 원가량의 세금이 투입됐다.

옥외광고물 관리·감독 주체는 각 구청장과 군수다. 그럼에도 지자체가 나서서 불법의 주체가 됐다는 사실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취재가 시작되자 해운대구청과 남구청, 서구청은 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24일 자로 현수막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다른 부서에서 제각기 현수막을 달아 관리가 부실했다”며 “사전에 옥외광고물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보건행정과에서 단 현수막인데, 요즘 워낙 바빠서 미처 떼지 못했다”며 “24일 자로 철거했다”고 밝혔다. 연제구청 관계자는 “현수막 게시 가능일인 30일이 지났지만 대형 현수막이라 바로 철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각 구청 홍보 현수막은 일부 철거됐으나 이 과정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회사원 정민철(34·부산 해운대구) 씨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인 불법 현수막을 구청에서도 마주쳐 불쾌했다”며 “시민들은 별 관심 없는 치적을 과도하게 알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방선거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안준영·변은샘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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