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내의 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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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숱이 점점 없어지는 탈모는 옛날부터 ‘신이 내린 형벌’ ‘권력과 젊음의 소멸’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됐다. 구약성서 이사야서에는 “시온의 딸들이 교만을 부리면… 향기 대신 악취가 나고, 곱게 땋았던 머리가 대머리가 되리라”고 경고한다. 베드로도 원형탈모 증상을 겪었던 모양이다. 베드로가 예수님 몰래 빵 한 조각을 훔쳐 모자 속에 감추었다가 빵 조각 크기만큼 머리카락이 빠지는 벌을 받았다는 ‘베드로의 대머리’ 전설이 전해진다. 기원전 1550년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 에베르스에도 ‘하마, 악어, 수고양이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르라’는 탈모증 치료 방법이 적혀 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탈모로 고민을 하다가, 염소 오줌을 바르기까지 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만큼 권력도 사라진다고 여겼다. 오죽했으면,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가 추천한 처방전(?)에 따라 ‘쥐와 말의 이빨, 곰의 지방을 섞은 로션’을 두피에 바르기도 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카이사르는 휑한 앞머리를 가리기 위해 월계관을 썼다고 한다. 머리카락을 젊음의 상징으로 여긴 중세 유럽에서는 대머리 남성들이 가발을 많이 착용해 가발 문화가 성행했다. 암 질병도 50% 이상 정복한 최첨단 의료 기술의 시대에도 3500년 이상 이어진 탈모 문제만큼은 완벽한 해결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서 배우 윌 스미스가 시상자의 뺨을 때리면서 여성의 탈모 비하 문제가 돌발적으로 부각됐다. 시상자는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대머리를 지칭하면서 “당신이 출연한 G.I 제인 속편을 보고 싶다”는 선을 넘은 농담을 던졌다. 2018년부터 자가면역질환 증세로 인해 원형탈모증에 시달린 제이다는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두려움이며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라면서 지난해 공개적으로 삭발을 감행했다. 아내를 위한 스미스의 폭력은 정당화되기 어렵지만, 매일 샤워장 바닥에 수북이 쌓이는 머리카락을 보는 사람에게 탈모는 매우 예민한 문제이다.

구약성서 열왕기하에도 동네 꼬마들이 예언자 엘리사를 대머리라며 놀리자, 곰 두 마리가 나타나 꼬마 42명을 모조리 죽이는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오죽했으면 탈모로 고통을 겪은 셰익스피어도 “세월은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주었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을까. 대머리를 놀리면 결코 신상에 좋지 않다는 교훈일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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