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시대 문화풍경] 예술, 기후위기 시대에 응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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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비발디의 <화성과 창의의 시도>(1725)는 12곡으로 구성된 합주 협주곡집이다. 그중 1~4곡이 널리 알려진 <사계>다. 계절의 순환과 자연 속에 깃든 온갖 생명, 인간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계절마다 14행 시를 덧붙여 변화무쌍한 사계의 정경을 오롯이 담았다. “봄이 왔네 축제로다/ 새들이 노래하며 봄을 맞이하네/ 산들바람이 시냇물을 어루만지면/ 졸졸졸 부드럽게 흘러가네/ 하늘 가득 어둠이 드리우며/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봄을 전하지만/ 이내 잦아들어 고요해지면/ 새들이 다시 즐거이 노래하네// 초원에 꽃들이 흐드러지고/ 나뭇가지 잎사귀들 바스락대는 소리에/ 양치기는 잠이 들고 충직한 개는 곁을 지키네// 백파이프 목가 축제의 소리/ 요정들도 양치기도 춤을 추네/ 찬란히 빛나는 봄의 지붕 아래” 봄의 소네트다.

<사계>는 1718~1720년경 작곡했다. 인간이 아직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전이다. 엄청난 탄소배출과 지구 온난화 현상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불과 30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세계는 어떠한가. 생물종 다양성이 줄어들고, 계절을 잊은 꽃들의 개화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태풍은 더 자주 더 거세게 들이닥치고, 빙하와 영구동토층마저 속절없이 무너져내린다. 비발디에게 영감을 주었던 아름다운 자연이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2050년에 이르면 어떠할까? 최근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했다. <불확실한 사계(Uncertain Four Seasons)>가 그것이다. 밝고 조화롭던 비발디의 사계는 음산하고 황량하게 변주된다. 지리정보를 변경하여 입력하면 도시마다 새로운 버전이 생성된다. 가령 시드니에서는 수많은 음표가 사라지고, 여름 태풍은 더 길고 강하게 지속된다. 새들의 감소와 해수면 온도 상승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울 변주곡은 음울한 잿빛 도시를 표현한 불협화음이 지배한다. 지금껏 15개 도시에서 변주됐다.

2018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특별총회에서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하면 티핑포인트, 즉 급변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지난해 공개된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2040년 안에 임계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 3년 전 연구 결과보다 무려 10년이나 앞당겨졌다. 그런데도 기후위기는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생활세계에서 감각적으로 체감하는 그날은 이미 늦은데도 말이다. 당장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불확실한 사계>를 숙명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시대,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은 수치와 관념으로 아는 것을 감정으로 느끼고 행동하게 만든다. 무딘 감각을 일깨우고 실천에 이르게 하는 힘, 예술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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