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옛사랑의 그림자?

대의제 형태의 민주주의가 처음 등장한 곳은 영국이다. 토지 귀족과 도시 부르주아(시민 계급)가 왕권에 맞서 의회 제도를 만들었다. 이른바 시민혁명.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명제가 여기서 나왔다. 프랑스는 왕과 지주 같은 지배층의 힘이 상대적으로 컸던 나라다. 소시민과 자영농민 등이 연합해 의회 민주주의를 태동시켰다. 그렇게 역사는 모든 국민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형태로 나아갔다.
독일과 일본은 국가 주도로, 러시아와 중국은 농민·노동자 계급에 의해 봉건 잔재를 청산한 경우다. 러시아혁명은 위대했지만 분명한 딜레마가 있었다. 대중들은 권위주의 타파를 원하는데 지도부는 혁명의 생존을 명분으로 권력을 놓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대중이 등을 돌리는 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증명한다. 지난 시대 최고 지성 중 한 사람인 배링턴 무어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갈림길에 섰던 역사를 이렇게 살피고 있는 것이다.
식민 지배와 분단이라는 남다른 아픔을 겪은 우리나라는 우리만의 싸움을 통해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꿔 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맨 앞,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첫 정의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국민적 권리와 헌법이 수호하는 민주적 제도들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일궈낸 민주주의의 빛난 결실들이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여기에 민주주의의 함정이 숨어 있다. 마치 공기나 중력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잊고 살아간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연한 것은 없다. 민주주의도 잃고 난 뒤에야 얼마나 귀중한지 알게 될 것인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오늘은 4·19 혁명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 겁도 없이 세상에 덤볐던 분들이 어느덧 팔순 노인이 되었다. 김광규 시인의 시가 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처자식의 안부를 나누고/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부끄럽지 않은가/부끄럽지 않은가….’(‘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염치라도 있었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것조차 없는 무감각의 시대다. 곧 새 정부가 출범한다.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는 혁명적 시기다. 민주주의가 쌓아 올린 법과 정의의 역사가 퇴보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옛사랑의 그림자보다는 눈앞의 사랑에 진력해야만 하는 것. 4·19가 던지는 메시지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