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한 지방 의사에 대한 늦은 조문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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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돈 편집부장


한평생 동네병원 진료실을 지킨 이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1930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2022년 4월 19일 부산 해운대백병원에서 숨을 거둔 한 지방 의사의 아흔두 해 일생에 부치는 조문이다.

고인은 일제강점기 6년제로 운영되던 부산공업중학교(현 부산공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군의관으로 7년 6개월 근무하는 동안 네 살 어린 박귀남 씨와 맞선을 보고 결혼했다. 당시 장인은 부산에서 큰 사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산 번화가 서면 인근의 범천동

경부선 철길 지나는 서민들 마을

그곳에서 한평생 동네 의원 지켜

낡고 좁은 병원의 인자한 원장님

아들 덕에 서울서 웅장한 장례식

‘부산의 슈바이처’ 편히 잠드시길


군의관 제대를 앞두고 경남 밀양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던 1962년, 고인은 첫째 아들을 낳았다. 서른셋에 자식을 얻은 그는 이듬해 제대를 하고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에 개인병원을 열었다. 동네 이름을 딴 ‘범천의원’이 그곳인데, 밀양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오다가 본 철길 옆 판자촌 동네를 보고 입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고인은 1963년 개원 후 2012년 문을 닫을 때까지 49년을 그곳 범천의원 원장님으로 불렸다. 폐업 후 삶을 마감할 때까지 10년 동안 의사로서 활동하지는 않았으니, 의료인으로서의 한평생을 오롯이 ‘범천의원 원장님’으로 보낸 셈이다.

‘범천의원 원장님’ 말고도 추가로 불린 호칭이 있는데,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부산의 슈바이처’나 ‘범천동 슈바이처’라는 것이다. 슈바이처(1875~1965) 박사는 아프리카 오지 의료봉사 활동 등을 통해 인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 역시 평생 가난한 동네의 의료 지킴이 역할을 했으며 미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존경받는 의사로 활동하면서도 책과 지식에 대한 열정의 끈을 쉬이 놓지 않았던 그였다. 그는 홀로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배움의 길에 나서 1971년 부산대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엔 〈간동맥 결찰이 간철대사에 미치는 효과=Effect of ligation of hepatic artery on iron metabolism of liver〉라는 주제로 고인이 취득한 박사학위 논문이 검색된다. 그의 나이 마흔을 넘었을 때였다.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운영하던 병원이 의원급이었지만, 병원이 있던 동네 특성상 전공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해 여러 과를 진료할 수 있는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갖췄다. 1986년 쉰일곱 살 때 일이다.

취미생활로는 독서를 즐겼다. 문학책을 즐겨 읽은 그는 진료실에도 책을 두고 환자가 없을 때 책장을 넘기곤 했다.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녀 일본어를 익힌 그였기에 일본 여행을 가면 한꺼번에 책을 여러 권 사 와 읽기도 했다.

그의 독서 취미는 자녀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큰아들은 자신의 책에서 어릴 때 아버지가 세계문학전집이나 과학전집을 사 주셔서 중학교 때까지 독서에 빠져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인은 부인 박 씨와 함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았다. 큰아들은 그처럼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며느리 역시 큰아들과 같은 의과대학 1년 후배를 맞았다. 둘째는 한의대를 졸업해 서울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뿐인 사위는 치과의사이다. 그는 의료인 집안으로 일가를 이룬 셈이다.

진료실 책상에서 삶을 마감하고 싶다며 여든을 넘기면서까지 동네 의원을 지키던 그는 2012년 홀연히 청진기를 내려놓았다. 체력이나 건강 문제도 있었겠지만, 세간에서는 장남의 영향도 적지 않았으리라 말한다. 실제로 고인은 생전에 “큰아이 일로 기자들이 수시로 찾아오고 해서 이 일을 오래 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49년간 운영한 병원을 닫고 여든셋에 은퇴한 고인은 부산 해운대에서 부인과 여생을 보내다 올 3월 30일 집 인근 해운대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4월 19일 큰아들 등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승과 작별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문재인 현 대통령과 곧 대통령에 취임할 윤석열 당선인의 조화가 나란히 놓였다. 고인의 장남인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이 상주로 자리를 지켰다. 그는 경기도 용인시 용인공원에 묻혔다.

‘안철수 위원장 부친’이 아니라 평생 부산에서 활약한 ‘서민들의 의사’ 범천의원 원장에 대한 짧은 조문을 남긴다. 편히 잠드시기를 빈다. 안영모 1930~2022.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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