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머스크의 트위터

2006년 미국 팟캐스트 업체 오데오의 CEO 애번 윌리엄스는 애플의 팟캐스트 진출에 위기를 직감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는 잭 도시 등 개발자들과 어느 날 공원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던 중 단문 문자 서비스를 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새가 가볍게 지저귀는 소리에서 착안해 이름을 트위터라 정하고 도시가 그해 3월 21일 밤 첫 트윗을 발송했다. 페이스북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트위터의 탄생 순간이다.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혁명으로 트위터는 날개를 달았다. 2008년 중국 쓰촨성 지진이나 2009년 미국 허드슨강 비행기 추락 사고를 거치며 ‘트위터 특종’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2009년에는 이란 대통령 선거 부정을 고발하며 세계적 정보망으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걸프전 후 속보의 상징이던 CNN을 이겼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즈음이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트위터로 선거운동하는 모습이 알려져 이용자가 크게 늘었다. 국내에서도 이효리 등 스타들이 가세해 트위터 열풍을 이끌었다. 지난달 작고한 소설가 이외수 씨는 2010년 당시 148만여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며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이라 불렸다.
140자의 간명한 메시지와 리트윗을 통한 공유의 파급력으로 디지털 공론장에서 각광 받았던 트위터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인기가 시들해졌다. 초기 참여·공유·개방의 가치는 희석되고 자극적이고 자기 과시적 글쓰기가 중심을 이루면서 이용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900만 명의 팔로어를 이끌며 ‘트위터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지만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백악관을 점령한 폭도들을 선동하는 트윗을 올리다 계정을 영구 정지 당했다.
테슬라 창업자로 세계 최고의 부호인 일론 머스크가 최근 440억 달러에 트위터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테슬라 주식 40억 달러를 팔기도 했다. 팔로어 8300만 명을 둔 ‘파워 트위터리안’인 그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거침없이 발언해 온 터라 트위터를 어떻게 바꿀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그는 트윗 한 줄로 암호화폐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테슬라 주가를 흔들기도 했다. 트위터의 소수자 혐오나 허위 정보 차단 노력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머스크가 말한 표현의 자유가 극단적으로 흘러 디지털 공론장을 오염시키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