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숙성시킨 연륜의 맛 금정산성창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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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재료로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맛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여러 가지 근거를 대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연륜이 아닐까. 산성마을의 많은 염소불고기, 오리백숙 식당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금정산성창녕집’에서 긴 세월이 숙성시킨 음식의 맛을 음미하면 연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창녕집’으로 출발 2대째 이어져
‘100년 가게’에 선정…
산성마을 식당 중 최초
염소숯불구이·한방토종오리백숙 인기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만든 밑반찬 신선

금정산성창녕집(대표 김철화)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대표의 부모는 원래 경남 창녕에서 농사를 지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한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산성마을이었다. 이곳에 김 대표의 고모가 먼저 와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마을에 식당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주민은 농사를 짓거나, 염소 같은 가축을 키우며 살았다.

어머니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구멍가게에 등산객이 하나둘 찾아왔다. 산에서 내려가다 허기를 채우거나 술을 한잔 걸치려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부탁에 따라 안주를 만들어주거나 염소, 닭을 잡아주다 나중에는 아예 식당을 차리게 됐다. 식당 이름은 부모의 고향 지명을 붙여 ‘창녕집’으로 정했다. 이후 주변에 비슷한 식당이 하나둘씩 생겼다. 지금은 산성마을 일대에서 영업하는 식당은 100곳을 넘는다. 2대째 이어지는 금성산성창녕집은 2년 전에는 ‘100년 가게’로 선정됐다. 산성마을 일대의 식당 중에서는 최초였다.

김 대표는 어렸을 때는 부모의 식당에서 일을 돕기도 했다. 청년 시절에는 시내에 내려가 개인 사업을 했다. 경험 부족 탓에 모든 걸 말아먹는 바람에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다시 산으로 올라와야 했다.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가게를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식당 일을 시작했다. 부모가 운영할 때 ‘창녕집’이던 상호는 최근 ‘금정산성창녕집’으로 바꿨다.

금정산성창녕집에서는 주로 염소 고기와 오리 고기를 판매한다. 인기 있는 메뉴는 긴 시간 동안 숙성시킨 소스로 구운 흑염소숯불구이, 오리숯불구이와 한약재 일곱 가지를 넣어 끓인 한방토종오리백숙이다.

염소숯불구이 소스는 간장을 기본으로 한다. 소스를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다. 먼저 오동나무, 월계수 등 한약재 7가지를 끓여 발효시킨다. 개복숭아, 간장에 마늘, 파 등을 넣어 양념을 만든다. 두 가지를 섞어 냉장고에 넣어 90일간 숙성시키면 소스가 완성된다. 김 대표는 “염소에서 나는 특유한 누린내를 잡으려고 오랜 고민 끝에 소스를 개발했다. 석 달 동안 숙성시킨 덕에 일정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방오리백숙에는 오가피, 엄나무, 월계수, 대추, 당귀 등 한약재 7가지를 넣는다. 오리는 따뜻한 물로 데쳐내 기름기를 걷어낸다. 여기에 물과 소금을 넣고 1시간 이상 끓이면 된다.

오리숯불구이는 고추장, 고춧가루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매콤한 맛이 좋다. 엄나무, 뽕나무, 꾸지뽕나무를 삶은 뒤 다시마를 넣어 10분간 우려낸다. 여기에 배, 양파를 갈아 넣고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어 양념을 만든 다음 한 달 동안 숙성시킨다.

김 대표가 음식에 앞서 염소숯불구이와 오리숯불구이에 사용하는 소스 세 가지를 가져왔다. 맛을 보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소스가 아니라 한약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염소숯불구이의 한약 발효액은 보약 같으면서 약간 알코올 기운이 느껴졌다. 간장 숙성액은 아주 깊숙하게 달고 짭짤한 맛이 낫다. 돼지갈비나 LA갈비에 이 소스를 활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오리숯불구이 소스도 평범한 고추장 양념이 아니었다. 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의 설명처럼 숙성시킨 간장 소스에 재워 구워낸 염소숯불구이에서는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았다.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을 사르르 간질이는 느낌이었다. 나른한 봄에 떨어진 입맛을 돋우기에 제격이었다. 깻잎절임이나 무와사비생채를 곁들여 먹으면 짭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한방오리백숙은 그야말로 보약 한 사발이었다. 그릇째 들이켠 국물은 진하고 고소했다. 거기에 깊은 한약 향이 많이 풍겼다. 지난겨울 동안 몸에 쌓인 독소와 올봄에 찾아온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오래 삶은 덕인지 고기도 야들하고 부드러워 먹기에 편했다.

금정산성창녕집의 다른 장점은 밑반찬이다. 상추 등 각종 채소를 모두 텃밭에서 길러 손님에게 내기 때문에 신선하고 맛있다. 고랭지 채소여서 성장이 늦고 작지만, 맛은 산 아래에서 키운 채소보다 몇 배 낫다. 김 대표는 “손님은 좋아하지만, 너무 힘들다. 작지 않은 규모의 밭에서 채소를 직접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염소, 오리 요리와 함께 나온 채소 밑반찬은 김치, 깻잎장아찌, 무와사비생채, 콩나물, 상추겉절이, 고추장아찌, 고사리 등이었다. 김 대표가 이번에는 상추겉절이를 무치는 데 쓰는 간장양념을 들고 왔다. 염소숯불구이 소스와 또 다른 맛이었다. 새콤하면서 짭짤한 게 봄에 떨어지기 쉬운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일 것 같았다.

▲금정산성창녕집/부산시 금정구 산성로 520. 051-517-5288. 흑염소숯불구이(1인분) 4만 원, 생오리숯불구이(한 마리) 4만 원, 한방오리백숙(한 마리) 4만 5000원, 한방닭백숙(한 마리) 4만 원.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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