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목가구의 수묵화’ 먹감나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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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고신대 총장

소장하고 있는 유명 작가들의 서명본 가운데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펄벅 여사의 가 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 소설의 서론 ‘역사적 노트’는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은 고상한 백성들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이다.’ 자신의 본명이 애당초 ‘Pearl(진주)’였고, 또 중국 이름인 싸이전주(賽珍珠), 한국 이름인 박진주(朴珍珠)인 그녀가 자신이 생장한 중국보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63년도의 한국에 대해 자기 이름에 해당하는 보석론 예찬을 펼쳤던 것이다.

버릴 것 하나 없는 7가지 덕목의 감나무
나무 속 신비한 검은 무늬가 든 먹감나무
귀한 목가구 재료 아름다움의 진수 선사

이 소설이 나오기 3년 전인 1960년에 펄벅 여사가 내한하여 경주를 찾은 적이 있었다. 늦가을 농촌 들녘에는 낙엽이 다 떨어진 감나무들이 서 있었는데, 나무마다 한결같이 감 홍시 몇 개씩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저건 따기가 어려워서 따지 않은 거냐”라는 그녀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동행했던 한국 지인은 “까치들이 파먹으라고 남겨 둔 까치밥”이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펄벅 여사는 공중에 나는 새도 배려하는 한국인이야말로 고상한 민족이요 그들이 사는 나라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을 떠날 때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여행에서 본 인상 깊은 일곱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파란 가을 하늘의 빨간 감 홍시로 그 색의 콘트라스트에 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자기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작가가 아니라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가 그 빨간 감 홍시를 보았던 경주는 전통적으로 감나무가 많고 특히 소목장들의 재료가 되는 먹감나무가 제일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연산군일기 54권에 보면, 1504년 7월 18일에 경상도 감사에게 탄시목(炭枾木) 400판을 바치라는 어명이 나오는데, 이 탄시목은 바로 먹감나무 판재를 뜻한다. 감나무는 자고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과수로 조선 초에 나온 (1433년)에는 감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그것의 7가지 덕목을 열거하고 있다.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녹음이 짙으며, 셋째 새가 집을 짓지 않고, 넷째 벌레가 들지 않으며, 다섯째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좋으며, 일곱째 낙엽은 거름이 된다고 예찬하고 있다. 하지만 감나무의 최고 덕이라면 먼저는 달고 맛있는 과일을 주는 것이고, 다음으로 목가구의 최고 재료인 먹감나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감나무는 심재(가운데 진한 부분)와 변재(바깥쪽 연한 부분)가 똑같이 옅은 황백색으로 색상의 차이가 별로 없는데, 가끔 심재에 먹칠한 듯한 검은 선이나 얼룩이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먹감나무라 한다. 감나무의 내면에 왜 이런 검은 부분들이 있는지 여러 연구들이 있지만, 대개 고욤나무와의 접붙임이 주원인이라고들 본다. 감나무는 그 씨앗으로 묘목을 만들면 돌감이 열리기에 접붙이기를 통해 번식시킨다. 이때 고욤나무가 접붙임 대목으로 쓰이는 것이다. 접붙이기는 대목에 새싹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인 4월이 적기이다. 이런 접붙임을 통하여 검은빛의 고욤나무 핵에서 먹물이 넓게 번지면서 먹감나무가 간혹 탄생하는 것이다.

하여튼 이렇게 형성된 감나무의 검은 심재는 잘라 내어야 할 이질적인 부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공들은 역발상으로 이를 자연이 주는 신비한 천연 무늬로 간주했다. 또 백 그루를 자르면 한 토막이 나올까 말까 할 정도의 희귀한 목재이기에 더 귀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에 이 먹감나무를 숯같이 생겼다고 탄시목, 또는 까마귀처럼 검다고 오시목(烏枾木)이라 하면서 이를 손에 넣으면 소목장들은 가장 고급스러운 목가구들을 제작하였다. 먹감나무 목재는 단단하면서 가공을 하면 윤기가 나고 고운데, 너무 귀하다 보니 가구의 윗널과 옆널에는 사용하지 않고, 주로 사람의 시선에 들어오는 앞널과 문판, 쥐벽간과 머름간에 사용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먹감나무 가구의 묘미는 그 검은 부분을 어떻게 절삭하고 배치하여 아름다운 무늬를 창출하는지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목장들의 예술적 내공인 것이다. 대개 산수문, 물결문, 구름문, 바위문 등 자연의 모습을 담는데, 모든 무늬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상하와 좌우의 균형미와 조화미가 핵심인 것을 볼 수 있다. 그 무늬를 보노라면 분청사기 같기도 하고, 또는 자연이 그린 한 폭의 산수 수묵화 같다.

감이나 홍시는 감나무가 매년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지만, 먹감나무는 자기를 죽이므로 생애 동안 단 한 번 사람들에게 주는 평생 선물이다. 그것도 자기 몸뚱이를 잘라서 내어 주는 비장하고 눈물겨운 헌신이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서 몇 십 년을 산다면 죽어서는 아름다운 가구로 몇 백 년을 사는 것이다. 먹감나무 가구야말로 우리나라 가구의 진주요, 굳이 펄벅 여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목가구에서도 보석 같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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