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별이 지다…‘원조 월드스타’ 강수연 별세
네 살에 데뷔해 한국영화와 함께 걸어온 영화인
9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 ‘정이’ 공개 앞두고 비보
영화 '씨받이'로 세계 3대 영화제 첫 수상 기록
영화배우 강수연이 7일 오후 3시께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뇌출혈로 별세했다. 연합뉴스
‘원조 월드스타’ 영화배우 강수연이 별세했다. 향년 55세.
강씨는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아 가족과 소속사 측은 수술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영화계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위원회는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이우석,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황기성으로 구성됐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나이 네 살때 아역으로 데뷔해 평생을 배우로 살았다. 아역 시절 ‘똘똘이의 모험’(1971) 등에 출연하며 동양방송(TBC) 전속 배우로 활동했다. 이후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 등에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로 성장했다.
고인은 스물 한살 때인 1987년에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아시아 최초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베를린‧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공식 수상한 최초 기록이다. 2년 뒤인 1989년엔 비구니 역을 맡아 삭발까지 한 임 감독의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당시 공산권 최고 권위였던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고인은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연산군’ 등을 선보이며 80년대 충무로를 장악했다. 1990년대에는 박광수, 장선우, 이현승 등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감독들과 작품을 함께 했다. 고인은 이때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길’(1992) ‘그대 안의 블루’(1993)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등 수많은 흥행작을 냈다.
200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천하’로 정난정 역을 맡으면서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이후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2006),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2010) 등에 출연했다.
고인은 단편 ‘주리’(2013)를 마지막으로 연기 일선에선 한동안 물러났다. 그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소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사태로 영화제가 좌초 위기에 처한 뒤 수년 동안 계속된 갈등과 파행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사퇴했다.
고인은 지난해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유고작인 ‘정이’에서 강수연은 기후변화로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22세기 인류의 내전을 해결할 뇌 복제 로봇을 책임지는 연구소 팀장 역을 맡았다. ‘정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올해 공개될 예정으로 촬영을 마치고 현재 후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강수연은 복귀작의 시청자 반응을 끝내 지켜보지 못하게 됐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에 차려졌다. 조문은 8일부터 가능하며 발인은 11일이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