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공동어시장의 시대적 역행
최세헌 해양수산부장

부산 수산업의 중심축은 단연코 부산공동어시장이다. 전국 최대 규모의 위판장으로 국내 수산물 위판량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수산 허브’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내년부터는 ‘현대화사업’도 진행되는만큼 현대화사업이 완료되면 부산은 부산공동어시장을 중심으로 다시금 명실상부한 ‘수산 도시’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부산 수산업의 핵심인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3월 부산공동어시장 대표이사 선거에서 박극제 현 대표가 단독 출마해 연임이 확정됐다. 박 대표는 지난달 19일부터 2번째 임기에 들어갔다.
대표이사 선출방식 변경하는 정관 개정
외부인사로 구성된 추천위원회 폐지
5개 출자수협 조합장의 입맛대로 선출
공정성·투명성 퇴보… 공공성 강화해야
박 대표의 단독 출마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공동어시장 대표이사 선거는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난립해왔던 터라 단독 출마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 대표의 무난한 업무수행 능력 등을 감안하면 경쟁자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오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바뀐 선거방식이 단독 출마의 배경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동어시장 측은 대표이사 선거를 앞두고 정관을 변경했다. 외부인사로 구성된 ‘대표이사 추천위원회’를 없애고, 어시장 지분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5개 출자수협(대형선망·대형기선저인망·서남구기선저인망·부산시·경남정치망) 조합장이 바로 후보자 자격심사 후 선거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관을 개정한 것.
기존에는 5개 출자수협이 추천하는 외부인사 5명, 해양수산부·부산시·수협중앙회 등의 추천인사 3명, 전문기관 인사 1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된 대표이사 추천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후보자를 추천하게 돼 있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5개 출자수협 조합장들의 투표로 과반수를 얻으면 당선됐다.
어시장 측은 선거방식 변경의 이유를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들이 총회 의결 단계에서 매번 부결됐고, 이는 행정낭비를 초래했다. 개정된 정관으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인 조합장들이 직접 대표를 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시장 측의 이 같은 해명은 전혀 논리적이지 못하다. 추천위가 추천한 후보들이 매번 부결된 이유는 ‘출자수협 조합장 3분의 2(4명) 찬성 방식’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과반수가 아니라 3분의 2 찬성 방식 때문에 지난 2019년 대표이사 선거가 파행을 겪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 선거에서 파행을 겪자 ‘과반수 찬성 방식’으로 정관을 개정함으로써 마무리가 됐다.
결국 어시장 측의 이번 선거방식 변경은 외부인사를 아예 배제하고 5개 출자수협 조합장들의 ‘입맛대로’ 공동어시장 대표이사를 선임하겠다는 속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분을 가진 주주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결코 아니다. 공동어시장 측도 자신은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인사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둘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동어시장 측의 이번 결정에서 간과된 것은 공동어시장의 공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부인사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공동어시장의 독점성과 공공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 후 외부인사 수를 점차 늘리면서 대표이사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더욱이 내년부터 진행되는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에는 국비와 시비 등 국민의 혈세가 1556억 원이나 들어간다. 늘어난 사업비를 고려하면 2000억 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부산시와 부산시의회 등은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을 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예산이 투입된만큼 공동어시장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애를 쓰는 형국이다.
공동어시장 측의 선거방식 변경은 명백한 시대적 역행이다. 추천위원회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인사 수를 더 늘려감으로써 대표이사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동안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비판에 휩싸였던 추천위원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등 추천위원회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선거는 끝났지만, 공동어시장 측은 다음 선거를 위해 지금부터 선거방식 개선을 준비해야 한다. 부산시와 해양수산부 등도 혈세가 들어간만큼 방관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corni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