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팝콘을 씹는 즐거움
권상국 경제부 유통관광팀장

어린이날 아닙니까, 아이들의 성화를 당해낼 수가 있나요. 마블 히어로 ‘닥터스트레인지’ 속편을 보러 가족끼리 극장 나들이를 했습니다.
사회적거리두기가 사라진 극장은 즐겁더군요, CG로 꾸민 화려한 영상도 흥미진진했지만 상영관 안에서 팝콘을 씹고 콜라를 들이켜는 그 즐거움이라니요. 영화가 본격적인 도입부에 들어가기도 전에 팝콘 통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웃집 아빠엄마도 ‘영화관 팝콘이 그리 맛있는 줄 몰랐다’며 찬양 일색이더군요. 영화 시작 30분도 안 돼서 팝콘이 동난 건 우리 집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박장대소했습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어린이날 전국의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130만 6980명이랍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같은 날 32만 6744명보다 무려 100만 명이 증가한 겁니다.
사회적거리두기는 사라졌고,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2년간 압수당했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하루하루입니다.
유통가에서는 선글라스와 여행 가방 매출이 독보적이고, 호텔가에서는 밀린 결혼 준비에 웨딩 상담이 봇물입니다.
헌데,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 이 순간이 누군가에는 또 고통입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화제가 된 한 영화관 직원의 호소가 그것입니다. 극장으로 관객은 몰려들고 있지만 인력은 충원되지 않아 혹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지금 시키는 그 팝콘은 직원들의 수명을 갉아내어 드린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이 사달라고 조르던 팝콘 대기 줄이 유독 길었던 게, 매표소 직원이고 매점 직원이고 할 것 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진땀을 흘리던 게 기억이 났습니다. 사회적거리두기가 사라진 극장에 신이 난 우리 가족 눈에는 그런 살풍경이 안 들어왔던 거죠.
더럭 겁이 났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서비스의 질이 코로나 팬데믹 당시 바닥을 친 수준으로 영영 굳어져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드는 겁니다. 코로나니까 누군가의 혹사가 당연시되었고, 코로나니까 형편없는 대우와 서비스도 참고 넘어가야 하는 2년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다시금 노동 현장에는 예전과 같은 수준의 인력과 처우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소비자 역시도 제값에 걸맞은 상품과 서비스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당연한 수순의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고 코로나 후유증을 안은 채 살아가야 할 겁니다.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월급쟁이 기자의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굳어진 관행은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걸 우린 잘 압니다.
역병의 창궐에 제 가족 챙기기 바빠 지난 2년 정말 많은 것들을 내팽개쳐 두고 도망쳤습니다. 이제는 코로나 엔데믹에 열광하며 달려나가기에 앞서 그간 경황이 없어 버리고 온 것들을 뒤돌아 보고 보듬어 주어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합니다.
그토록 원하던 코로나의 종식은 영화관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팝콘을 씹는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 기분 좋게 튀겨낸 팝콘을 고맙게 집어 드는 바로 그 순간일테니까 말입니다. k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