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남부권 재도약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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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현 부산연구원 경제·산업연구실장

5월 10일 우리나라의 새로운 5년의 항해가 시작됐다. 새 대통령 취임에 앞서 신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담긴 110대 국정과제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발표됐다. 반갑게도 부산시의 핵심 현안들이 국정과제나 실천과제에 대부분 담겼으며 최근까지 논란이 된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그중 하나로 시작을 위한 추진 동력을 얻었다. 향후 관련 법 개정에서부터 이전기관과의 합의 등 많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이전을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크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부산이 금융중심지로 성장하기 위한 목적 외에 남부권 재도약을 위한 정책금융 활성화까지 정책적 스펙트럼이 넓은 현안이다. 무엇보다 산업은행이 가진 상징성이 크다. 산업은행은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 경제 재건을 위한 정책금융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고도성장기에는 창원, 구미, 울산, 여수 등을 중화학 공업의 수출 거점으로 성장시키는 데도 한몫했다. 국가경제개발계획의 중심에 외자 조달의 교두보인 산업은행이 있었다. 지금까지 남부권에서 사람을 모으고 일자리를 만드는 거점도시들이 성장하는 데 산업은행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법 개정과 협의 위한 첫걸음 시작
4차산업혁명 이끌 정책금융 절실

부울경 생산유발효과 2조 4000억
민간 주도 글로벌 도시 성장 교두보

산은 이전 반대 논리 “지방 가기 싫다”
균형발전 위해 추가 이전 추진해야



그런데 최근 이렇게 성장했던 남부권 제조업 거점도시들이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라는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신흥국의 추격에 발목이 잡혀 침체의 길로 가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 남부권 광역지자체들은 블록체인, 메타버스, 인공지능, 스마트 제조, 로봇 등 디지털 전환을 위한 신산업과 함께 수소, 배터리 등 탄소중립 사회에 대비한 미래 먹거리 육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자체의 재정 여건상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함에 따라 지역에 맞는 시책을 통한 특화된 비즈니스로 육성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지역의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 지원이 가능한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필요한 이유다.

산업은행 이전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금융기관 하나 옮긴다고 지역산업이 살겠냐”고 한다. 물론 국책은행 하나 옮긴다고 지역산업의 대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끈 산업은행의 이전을 시작으로 남부권 산업의 대전환을 위한 ‘산업금융 네트워크’ 구상이 필요하다. 서울은 5대 글로벌 ‘금융 허브’를 지향한다. 부산도 ‘글로벌 금융중심지’를 희망한다. 그러나 지금 부산에 시급한 것은 글로벌 금융중심지보다는 지역의 성장 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금융 기능 강화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끈 산업은행의 이전을 시작으로 남부권 산업의 대전환을 위한 ‘산업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중심지로 나아가는 단계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은행의 2022년 사업비만 30조 8091억 원으로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만으로도 부산·울산·경남 생산 유발효과가 2조 4000억 원 규모라고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혁신도시 이전 금융기관, 남부권 지역은행 등이 연계되는 산업-상업-지역 금융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지역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자금 지원에서부터 창업 지원, 대기업 유치 지원까지 맞춤형 금융 지원이 가능해 지역의 혁신 성장에 훨씬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부권 산업금융 네트워크는 지역의 미래 먹거리 육성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 유치, 나아가서는 강소도시를 민간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도시로 성장시키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지금은 모두 금융과 정치가 있는 서울로 떠났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다수가 부산에서 출발했다. 6·25전쟁 시기 산업은행법의 기초가 만들어진 곳도 부산이다. 이 법에 따라 1954년 4월 산업은행이 발족된 것이다. 산업은행이 부산에 이전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새 정부는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위해서는 지역이 필요로 하는 국책기관과 기업들의 이전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의 혁신 성장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으로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열어 글로벌 중추국가로 성장할 수 있다.

산업은행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지방에 가기 싫다”로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누구도 가기 싫은 지역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책금융의 소명을 다해서 민영화를 추진했던 경험도 있는 산업은행을 큰 역할도 없는 수도권에 두기보다는, 더욱더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전하여 기관의 소명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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