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아의 그림책방] 초록을 좋아하나요
문화부 부장

초록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초록. <세상의 많고 많은 초록들>(다산기획)은 초록이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줍니다. 로라 바카로 시거 작가는 ‘울창한 초록’ 숲, ‘깊푸른 초록’ 바다, ‘거뭇한 초록’ 정글, ‘빛바랜 초록’ 담장 등 사람들이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초록의 존재를 알려줍니다(그림). 흔히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초록은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흰 눈에 덮인 초록이 새봄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싱긋하고, 누릇하고, 얼룩덜룩하고. 초록에 대한 그림책 속 다양한 표현이 매력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순의 반짝이는 초록과 햇살을 받은 나뭇잎의 투명한 초록을 제일 좋아합니다.
초록에는 사람을 위로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이별해 슬펐던 어느 오월, 차창 밖에 초록이 일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낮은 풀부터 큰 나무까지,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초록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김윤이의 <나무 그림자에 숨은 날>(한울림어린이)에는 마음을 다친 아이가 나옵니다. 혼자 있고 싶은 아이는 커다란 나무를 찾아갑니다. 화난 마음, 속상한 마음, 억울한 마음을 큰 그림자가 숨겨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무 그림자 밑에 앉아 가만히 자연의 변화를 느낍니다. 쏴~ 바람이 부니 마음마저 시원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설픈 위로보다 말없이 존재하는 자연이 때로는 더 큰 위안을 줍니다. 초록 자연은 사람을 위로하고 도시를 숨 쉬게 합니다.
마크 마틴 작가는 <숲>(키즈엠)에서 사람과 숲의 관계를 그립니다. 사람들이 숲의 나무를 한 그루, 두 그루 베어냅니다. 결국 숲이 사라집니다. 대신 그 자리에는 높은 집과 공장이 들어섭니다. 나무를 없앤 도시는 점점 더 오염됩니다. 어느 날 검은 하늘이 비를 퍼붓고, 세찬 바람이 도시를 뒤흔듭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만이 살아남습니다. 개발로 도시에서 숲이 사라집니다. 동네의 오래된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가고, 골목의 담쟁이 덩굴도 잘려 나갑니다. 초록이 없는 도시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요? 여름 뙤약볕, 숨 막히게 더운 바람. 메마른 도시에서 우리의 마음도 같이 버석거리지는 않을까요?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