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이태석 신부의 망고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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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요한 보스코 신부는 청소년의 친구이자 스승, 아버지라 불린다. 불우한 어린이와 청소년이 신앙을 바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살레시오회를 창설했다. 돈 보스코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뒷날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오늘날까지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는 살레시안이 숱하다. 살레시오 사제 이태석 신부는 수단의 돈 보스코다. 기아와 폐허의 땅 수단 남부 톤즈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다양한 구호 활동을 펼쳤다. 특히 각종 전염병과 풍토병이 만연한 톤즈에서 의료활동이 시급했다. 톤즈의 유일한 의사로서 고름과 오물로 뒤덮인 환자들의 치료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인근 지역에서 몰려드는 환자가 하루 이삼백 명을 넘어도 돌려보내거나 찡그리는 일이 결코 없었다. 한센병 환자에게는 더욱 각별했다. 이런 까닭에 수단의 슈바이처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이태석의 세례명은 요한이다. 보스코 신부의 이름과 고귀한 뜻을 좇았다. 의료활동 못지않게 톤즈의 교육에 미친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수단은 인종과 종교 문제로 무려 22년이나 내전을 겪었다. 잦은 폭격으로 학교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교육환경이 처참했다. 이태석은 톤즈의 미래가 교육에 있다고 믿으며 일찍부터 교육에 헌신했다. 탁월한 리듬감과 넘치는 흥을 지닌 톤즈의 아이들에게 음악은 신앙과 사랑을 실천하는 방편이었다.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아이들의 공허한 눈빛에도 차츰 생기가 돌았다. 총과 칼을 녹여 클라리넷과 트럼펫을 만들어 폐허의 전장이 신생의 꿈으로 출렁이기를 바랐던 것이다.

수단 남북부 평화협정이 체결된 때는 2005년 1월이다. 피란민들이 돌아오고 학교를 찾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이태석은 교육 재건에 전력을 다했다. 초중등뿐만 아니라 고등교육과정까지 확대하여 2008년 돈보스코학교 학생 수가 1400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의대 진학생이 70명이 넘는단다. 이들은 환자와 눈을 맞추고 온화한 말로 안심시키며, 환자의 상처를 온 마음으로 보듬는다. 영락없는 이태석이다. 한없이 낮은 자세로 환자를 대했던 스승의 길을 오롯이 되밟아 가는 셈이다. 이외에도 과학자, 공학자, 사회활동가로 성장하여 톤즈의 미래를 든든하게 다지고 있다.

2010년 이태석 신부는 향년 48세로 선종했다. 살아서는 끝내 그리운 톤즈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톤즈에 깃들어 산다. 톤즈를 향한 사랑의 물결이 여전하고, 제2 제3의 이태석으로 거듭나는 제자들이 짙푸른 망고나무숲을 이루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은 이러한 이태석의 꿈과 사랑의 결실을 오롯이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지난 화요일 부산사람 이태석 기념음악회가 오충근의 지휘로 열렸다. 새 시대의 기상을 부제로 삼았다. 이태석이 그랬듯이 나눔과 사랑이야말로 초토에서 신생을 여는 가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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