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심심한 뉴스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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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필자의 직장 주변은 대학가라서 모든 것이 젊은 세대 위주로 맞춰져 있다. 음식 맛에서도 요즘 세대의 취향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음식 종류를 불문하고 너무 맵고 짜고 달아서 재료 자체의 맛을 음미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계절이 멀다 하고 식당 간판이 바뀌는 것을 보면 이런 강한 맛이 오래 환영받는 것 같지도 않다. 이젠 음식도 강한 자극과 시류 영합이 대세가 됐다.

우려할 만한 일이지만 뉴스도 음식 맛의 추세를 닮아 가고 있다. 요즘은 거의 모든 언론이 거칠고 원색적인 제목이나 어휘 선택으로 이용자의 원초적 감정을 자극한다. 우선 기사 문장에 사용되는 어휘가 지나치게 부정적이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최근 큰 이슈인 검찰 수사권 관련 보도에서는 “법 절차 무시하고 기어이 검수완박 ‘꼼수 완성’”, “검수완박 5인방. 마지막까지 뻔뻔”, “윤, 아직도 검찰총장인 줄 착각… 역대급 무능 인수위” 등의 원색적 표현이 거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사용되는 어휘만 보면 정당 대변인의 규탄 성명인지, 신문 기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군데군데 비속어나 은어, 시대착오적인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 후퇴… ‘이대남 뒤통수쳤다’”, “대통령실도 ‘늘공’이 채웠다… 국민의힘 ‘공신 홀대론’ 부글”).

언론사들 사용 어휘 거칠고 자극적

정파적인 보도 태도와 관련성 높아

이슈의 논점을 흐리는 부작용 초래

언론 본연 역할·정보 전달 충실해야

자극적인 언어 사용은 뉴스의 과도한 정파화와 관련이 있다. 필자는 다른 연구자와 함께 김영삼 이후 6명의 대통령 임기 1년 동안 중앙 일간지 보도기사 10만여 건의 어휘를 대상으로 빅데이터 분석의 일종인 감성분석(sentiment analysis)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 보수 신문은 진보 성향의 대통령보다는 보수 대통령에게 더 우호적인 어휘를 사용했고, 반대로 진보 성향 신문은 진보 성향 대통령에게 더 긍정적이었다. 임기 초 언론의 우호적 보도가 이어지는 ‘밀월 기간’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보수 언론은 보수 대통령과, 진보 언론은 진보 대통령과의 밀월 기간이 더 길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결과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논조나 내용이 아니라 사용한 어휘를 분석했는데도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신문 보도에서 부적절하고 자극적인 어휘가 정파성 구현의 수단으로 남용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자극적인 정파화는 서로 관련이 희박한 사안을 의도적으로 연결해 부각하거나 착각을 유발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른바 대통령의 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여’ 논란과 KTX 물금역 정차 논란이 좋은 예다. “문, 검수완박 못 박는 날 1억 넘는 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여도”라는 기사는 두 가지 별개 사안을 연결하고 자극적 어휘를 사용해 부정적 감정을 유발한 예다. 경남 양산 물금역의 KTX 정차 논란은 고의적으로 착각을 유도하는 왜곡 방식이다. 이 ‘논란’이란 표현은 문 대통령의 사저가 역 인근에 있음을 강조해 입지 선정에서 특혜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미 사용 중인 KTX 울산역은 사저에서 10km쯤 떨어져 있고, 물금역까지의 거리가 20km 정도로 오히려 더 멀다는 사실은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고의성이 다분한 의혹 제기인 셈이다.

이러한 수법의 문제점은 흥미는 유발하지만 이슈의 논점을 흐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이 논란거리로 부상한다면 관련된 정보와 맥락을 판단의 자료로 제공해 주는 것이 원칙이다. 정파적 매도가 아니라 그러한 평가의 원인과 근거 제시가 언론의 기본 역할이다. 자극적이고 정파적인 선동이 그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가령 무궁화대훈장 셀프 수여 논란은 훈장 제도 자체의 한계와 관련이 있다. 재임 중 탄핵당한 박근혜 대통령도, 실형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대통령도 이 고가의 훈장을 받은 것을 보면 제도의 문제점은 명확하다. 이 훈장 수여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 폐지나 개선을 거론하는 것이 정상인데, 유독 특정인에 대해 ‘셀프 수여’와 ‘1억’을 강조한 것은 정파적 선정주의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과연 다음 대통령 때도 똑같은 ‘논란’ 보도를 내보낼지 궁금하다.

뉴스는 정보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고, 제목이나 문장은 이 과정을 좀 더 쉽고 매끄럽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느새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버렸다. 물론 언론의 자극적인 표현은 치열한 클릭 경쟁 속에서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일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하지만 결국 시민뿐 아니라 언론사도 피해자가 되고 만다. 이슈와 무관하게 정파성별로 논조가 정해져 있고 새로운 정보도 줄 수 없다면 이용자는 굳이 뉴스에 비용과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다. 자극적인 맛은 매력적이지만 음식 본연의 기능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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