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북항, 국가 규모의 뜨거운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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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북항이 다시 열렸다. 2006년 신항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북항 재개발의 1단계 친수공원 조성이 완료되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북항이 그 오랜 생애를 뒤로하고 새로운 삶의 장을 펼치려 한다. 왜구의 침탈과 임진년에 발발한 7년의 전란을 겪고, 왜관을 통한 평화로운 교역의 시대를 거치다 식민도시의 항구로 발전하였다. 일제가 지배하는 근대의 바다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왕래했을까?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더불어 우리에겐 해양의 해방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지 않았는가. 또한 한국전쟁의 위기에서 미국을 위시한 여러 우방과 접속하여 지원을 이끈 역사적 공간이지 않은가. 아울러 해양화를 통하여 근대화를 성공으로 이끈 무대가 아닌가. 그러니 북항은 우리 민족의 애환과 국가의 명운을 담은 굴곡지나 빛나는 생애를 품고 있다. 이는 국가적 위상을 견지한 뜨겁고 위대한 상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민족의 기억 축약한 공간
정부 전폭적인 지원 절실

국가적 역사 박물관 재현
대형선사 북항 불러들여야

지방선거 열기 낮아 아쉬움
로컬 살려 부산 위상 세우길

노후화되거나 유휴화한 항만을 재생하는 일은 이미 세계 여러 선진국에서 거쳐 지나간 일반적인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단지 우리 지역의 일로 한정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항은 부산에 있을 뿐, 우리나라 전체의 기억을 축약한 공간이다. 물론 어느 지역이든 크고 작은 의미들을 간직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러함에도 북항만큼 민족적, 국가적 역사를 지닌 장소를 찾긴 힘들지 않을까 한다. 이는 한갓 자기중심적인 로컬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게 북항의 고단하고 찬란한 생애사가 아닌가. 그러므로 북항 재개발은 국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그저 지역 정부나 지역의 항만공사에게만 맡겨 둘 사안이 아니다. 그만큼 북항은 부산이자 대한민국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필요하고, 이에 관한 우리 시민과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어야 한다.

역사적 기억은 영광이든 굴욕이든 모두 기념되어야 한다. 식민도시의 전사인 왜관을 복원하자는 요청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관부연락선과 같은 일제의 미디어나 상선과 원양어선의 출항과 정박도 그 모형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적어도 부두와 항만이 확장되고 선박 운항이 달라지는 경과가 야외 박물관의 형태로 세심하게 재현되면 좋겠다. 물론 들고 난 사람과 물자에 관한 이야기도 보태져야 하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복원하고 재현할 것인지에 대한 시행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불타 없어진 부산역이나 건축물의 상부 상징물만 남겨진 세관과 아예 일체 사라져 버린 부산부 건물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함에도 부두와 선박이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는 풍경을 조형하는 일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일이 빠진다면 북항은 밋밋한 친수공간과 상업적인 활용이라는 빈곤한 경관을 크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참에 부산항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한 국내 대형 해운선사들을 북항과 그 인근으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우리 지역에 터전을 두면서 그 본사를 수도권에 둔 까닭이 무엇일까? 경제에는 문외한이지만 금융 등의 제도적인 혜택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글로벌 네트워크에 수월한 이점도 있겠다. 마침 산업은행과 해양금융기관의 부산 이전이 이뤄지는 계기가 생긴 마당이니 해운선사도 부산으로 이전하여 집적하는 양상이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북항을 매개로 원도심과 항만 그리고 미군이 지닌 보급 창고 부지와 문현 금융단지를 잇는 그랜드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의도이다. 나는 이러한 입장에 깊은 공감을 갖는다. 부울경 연대라는 외연의 확장도 필요하고 2030 부산월드엑스포라는 메가 이벤트 유치도 힘을 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그 근본적인 차원은 북항이라는 장소에 있다. 북항을 대한민국의 축도(縮圖)라는 관념으로 접근하는 일이다.

공식적인 선거 운동이 아직 시작 전이라 그런지 모르겠으나 이번 지방선거는 유난히 뜨지 않는다. 양당 구조가 고착되면서 무투표 당선이 지난 4년 전보다 급증하였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들린다. 한편으로 수도권 중심주의에 휘둘리고 다른 한편으로 중앙 정치의 구도에 예속된 지방민의 심사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이러한 중심주의적 인력에 너무 쉽게 이끌려 오늘날의 이와 같은 불길한 일극 체제의 혁파를 부르짖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이미 심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사태라고 수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스스로 지역의 가치를 찾아서 비판적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면서 웅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로컬을 살려 내고 부산이라는 국가적 위상을 오롯이 세울 체제를 찾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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